출판사 사장은 늘 같은 말을 했다.
“진호씨. 저 사람 반에 반만 닮아봐요. 얼마나 좋아요.”
모욕 섞인 농담에 회의실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진호는 억지 미소를 지었지만 속이 뒤집혔다.
자신은 여전히 무명. 몇 년 전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아직도 분식집에서 오뎅 한 조각을 남기는 버릇조차 버리지 못한 채였다. 그에 비해 지훈은 언제나 신작을 냈고, 그 글은 이상할 만큼 사실적이었다. 마치 직접 겪은 듯한 디테일로 가득했다.
어제 밤 뉴스에 나온 미제 사건의 현장 묘사—길바닥에 흩어진 동전, 피해자가 늘 차고 다니던 반지.
그건 지훈의 신작 속에도 똑같이 있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똑같았다.
가슴이 조여왔다. 여자를 잃은 상실 이후, 그는 죽음의 그림자에 더 예민해져 있었다.
‘저건… 그냥 상상으로는 쓸 수 없어.’
그날 밤, 그는 충동적으로 지훈의 집 앞에 섰다.
오래된 아파트, 불 꺼진 창문.
문틈을 비집고 들어가자 눅눅한 종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 안은 원고지와 스크랩으로 뒤덮여 있었다.
책상 위에는 진호가 몇 달 전 쓰다 찢어버린 줄 알았던 그 원고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글을 읽자 어디선가 본 듯한 글이었다. 그것은 진호의 원고 초안이었다.
진호는 과거의 경험을 원고로 남겨놓았었는데 갑자기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그 과거의 추억들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밤새워 써 내려간 그녀와의 추억,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문장들이 지훈의 이름으로 묶여 있었다.
지훈은 훔친 것이었다.
그의 슬픔과 고통, 그의 단 하나의 이야기를.
책상 귀퉁이의 원고에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덧칠돼 있었다.
“내가 쓴 것처럼 다듬었다. 이제 세상은 나를 기억할 것이다.”
서랍을 열자, 손끝에 차가운 쇳덩이가 걸렸다.
그 속에는 진호가 한때 여자친구에게 건네려다 잃어버린 열쇠꾸러미와 은팔찌가 들어 있었다.
그녀의 물건마저 지훈이 손에 쥐고 있었다.
지훈은 직접 칼을 쥔 자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 곁에 있었다.
범죄를 방조하고, 그 기억을 소설로 쏟아내며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세상은 그걸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글”이라며 찬양했다.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낡은 신발 밑창이 바닥을 스쳤다.
발자국 소리가 방 앞에서 멈췄다.
주인공은 봉투를 손에 쥔 채,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문이 열리자 지훈과 눈이 마주쳤다.
놀람, 분노, 그리고 알 수 없는 해방감이 섞인 눈빛.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스쳐 지나갔다.
결국 누가 먼저 입을 열지 모르는, 아직 쓰이지 않은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