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아파트 단지.
벽에는 곰팡이가 피고, 계단 난간에는 녹물이 스며 있었다. 여름 장마철이면 배수구에서 올라오는 썩은 냄새가 복도를 뒤덮었다. 이곳 사람들은 익숙한 듯 그 냄새를 맡으며 무심히 드나들었지만, 몇 해 전 일어난 사건만큼은 여전히 이곳의 공기를 짓눌렀다.
며칠전, 그 사건만 아니었어도 그나마 사람이 사는 냄새가 났을 것이다. 밤길을 걷던 여대생이 알 수 없는 괴한에게 칼에 찔려 숨지지만 않았어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단지 곳곳에는 CCTV가 촘촘히 박혔다. ‘이제 안전하다’는 말과 함께, 동시에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노출됐다’는 묘한 불안이 퍼졌다.
見原 透.
그의 이름은 ‘본다, 꿰뚫는다’는 뜻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보는 대신 방 안에 틀어박혀 추리소설만 뒤적였다. 토오루는 은둔형 외톨이었다. 직업도, 친구도 없이 하루 대부분을 책에 빠져 살았다. 그것도 심리학 책으로. 방 안에는 탐정소설과 범죄 심리학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의 유일한 외출은 편의점. 컵라면과 맥주 캔을 들고 돌아오는 단순한 루틴이 다였다.
그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세상에 완벽한 범죄란 없어. 모든 범인은 결국 드러난다.”
하지만 그 자신이야말로, 누군가의 눈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옆집에는 난닝구 차림의 아저씨가 살았다. 반쯤 벗겨진 머리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50대. 늘 땀 냄새가 밴 몸으로 복도를 서성이며, 가끔 토오루의 집 앞에 잠시 서 있다가 발소리를 죽이며 사라졌다.
주민 누구도 그의 이름을 몰랐다. 토오루는 그를 보며 확신했다.
“저 남자다. 몇 해 전 여대생을 죽인 범인.”
어느 날, 토오루의 메일함에 한 통이 도착했다.
발신인은… 놀랍게도 자기 자신의 아이디였다.
“어젯밤, 네가 소설 읽다 졸던 모습. 잘 봤다.”
토오루의 손끝이 떨렸다. CCTV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오직 방 안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일.
그 순간, 그의 모든 의심은 옆집 아저씨를 향했다. 복도에 울려 퍼지는 슬리퍼 소리, 새벽마다 방문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 조각들은 하나로 이어졌다.
그는 점점 집착에 빠졌다.
아저씨의 쓰레기를 뒤지고, 주민 모임에서 그를 지목하며 소리쳤다.
“그 남자가 범인입니다! 과거 사건도, 지금 나를 감시하는 것도 다 그 자식이야!”
주민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또 저 사람이지…”
“추리소설에 미쳐서 망상하는 거야.”
토오루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잠은 줄었고, 편의점 종업원조차 그를 기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기억을 더듬다 문득 떠올렸다. 며칠 전, 아파트 전체 인터넷과 전화선을 고치러 왔던 젊은 기사. 그는 집 안 깊숙이 들어와 공유기와 선을 만지작거렸던게 기억났다.
혹시… 그때 무언가를 심은 건 아닐까? 그가 진짜 범인이라면?
그러나 이미 늦었다. 그의 외침은 아무도 듣지 않았다. 모든 사람의 시선은 이미 토오루에게 쏠려 있었다.
또다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토오루의 방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미스터리 소설, 수첩에 빼곡히 적힌 ‘감시’, ‘음모’, ‘범인’ 같은 단어들을 증거처럼 내밀었다. 주민들도 한목소리로 말했다.
“범인은 미하라다.”
토오루는 절규했다.
“아니야! 난 본 것뿐이야! 진짜 범인은… 수리 기사였다고…!”
그의 목소리는 곧 사이렌 소리에 묻혔다.
밤이 깊어졌다. 불 꺼진 토오루의 방.
공유기 옆, 작은 불빛이 깜빡였다.
그 붉은 빛은 마치 누군가의 눈처럼, 방 안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