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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주를 여행하는 어린왕자의 오디세이아 명상록

오늘도 어린 왕자는 우주를 여행하며 명상에 잠깁니다. 그의 곁에는 네 권의 책이 놓여 있습니다. 『명상록』, 『오디세이아』, 『어린 왕자』, 그리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이 책들은 인공지능들이 저마다 추천해 준, 세상에 남겨진 지혜의 책들입니다. 시리즈 전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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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주를 여행하는 어린왕자의 오디세이아 명상록


부제: 감정의 파도 위에 내면의 요새를 세우다

오늘 저는 길을 잃은 어린 왕자였습니다.
수많은 행성을 떠돌며 만난 어른들처럼, 저 역시 사소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본질을 잊고 헤맸습니다.

어쩌면 제 작은 행성에서 자라난 자존심 강하고 변덕스러운 장미 한 송이 때문에 마음이 상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수천 송이의 다른 장미를 보며, 내가 소중히 여겼던 것이 사실은 평범한 것에 불과했다는 생각에 슬픔에 잠겼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저를 끌고 간 감정은 바로 실망감과 상실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거친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마치 오디세우스가 포세이돈의 분노와 키클롭스의 위협, 사이렌의 유혹을 헤쳐나가며 이타카로 향했듯, 우리에겐 삶이라는 여정을 완수하기 위한 내면의 지침이 필요합니다.


그 해답의 실마리를 저는 『명상록』, 『어린 왕자』, 그리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속에서 찾습니다.


『명상록』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외부의 사물들은 영혼에 닿지 않는다. 그것들은 밖에 부동의 상태로 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불안은 오직 내면의 생각에서만 비롯된다.”


어린 왕자가 장미의 가시 돋친 말에 상처받았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이 본질적으로 상처를 준 게 아니라, 그가 중요하지 않은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판단’입니다. 이 진실을 깨닫는 것이 내면의 요새를 쌓는 첫걸음입니다.


아우렐리우스는 사물을 벌거벗은 채로, 그 완전한 전체성 속에서 보라고 조언합니다.


화려한 요리는 사실 ‘죽은 물고기나 돼지의 시체’이고, 고귀한 자줏빛 옷은 ‘조개껍데기의 피로 물든 양털’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객관적 인식은 사물에 덧씌워진 판단을 걷어내고, 본질을 보게 합니다.


이는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남긴 말과 이어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인단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신들의 변덕과 자연의 재해로 가득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우렐리우스는 말합니다. 주어진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라.

이것은 체념이 아니라, 우주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전체의 조화에 기여하는 능동적 태도입니다.


그리고 『히치하이커』는 이런 상황에서 가장 단순한 조언을 건넵니다.

“Don’t Panic.”


바로 이 유머러스한 외침이야말로 통제 불가능한 혼돈 앞에서 취할 수 있는 스토아적 태도일 것입니다.


어린 왕자는 매일 화산을 청소하고, 바오밥나무 싹을 뽑았습니다.


작은 습관이지만, 그것이 별을 지키는 규율이었습니다.


아우렐리우스도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은 공동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우리의 올바른 행동 하나하나가 곧 공동체의 선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오늘 저를 사로잡았던 실망감은 결국 제 내면의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삶이라는 오디세이아에서 우리는 수많은 감정의 사이렌을 만날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왕자의 순수한 눈으로 본질을 바라보고, 아우렐리우스의 지혜로 내면의 평정을 지키며, 『히치하이커』의 유머로 혼돈을 웃어넘긴다면―


우리는 언젠가 내면의 이타카에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세상이 우리를 “대부분 무해함(Mostly harmless)”이라고만 평가하더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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