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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침묵이 말해주는 것

물과 기름이 뒤섞인 역한 냄새가 축축한 공기 중에 떠다닌다.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주방의 열기는 숨을 턱턱 막히게 하고, 쉴 새 없이 울리는 고함과 냄비 부딪히는 소음은 귀를 먹먹하게 만든다. 이곳은 파리의 어느 고급 호텔 지하, 접시닦이(plongeur)들이 일하는 공간이다. 바닥은 비눗물과 음식물 쓰레기, 찢어진 종이가 뒤엉켜 질척거리고, 노동자들은 땀에 젖은 겨드랑이를 드러낸 채 샐러드를 버무리거나 크림 통에 엄지손가락을 찔러 넣는다. 그들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혹은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하루 14시간을 이 아수라장에서 버틴다. 이것은 소설 속 장면이 아니라, 조지 오웰과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직접 체험한 노동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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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Guide for Barbara Ehrenreichs Nickel and Dimed On (Not) Getting By in America

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 (George Orwell


돈이 없으면 인간은 무너진다. 힘을 잃고, 쉽게 착취당하며, 마침내 존엄마저 잃는다. 이 명제는 관념이 아니라, 수많은 삶이 증명해 온 냉혹한 사실이다. 우리는 돈이 없어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낭만을 꿈꾸지만, 오웰과 에런라이크, 그리고 마르크스가 보여준 기록은 그 믿음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폭로한다.


Karl Marx, Frederick Engels. Volume 35, Karl Marx - Capital Volume 1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육체다. 에런라이크는 최저임금 노동자로 위장 취업해 허리 부상과 발진에 시달렸다. 오웰은 굶주림 끝에 자신을 “몇 개의 부속 기관이 달린 배(belly)”에 불과하다고 기록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생명 연장은 자본에 중요치 않으며, 오직 하루에 짜낼 수 있는 노동력만이 계산 대상이라고 분석했다. 임신한 몸으로 다치고도 병원에 가지 못한 동료 홀리의 사례는 이 잔혹한 구조를 증언한다.


육체의 붕괴는 존엄의 상실로 이어진다. 돈이 없는 자는 자신을 지킬 힘조차 없다. 에런라이크는 절도 누명을 쓴 동료를 두둔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가난이 성품을 갉아먹는 순간이었다. 오웰은 가난이 끝없는 거짓말을 강요한다고 했다. 식사할 돈이 없으면 공원에서 시간을 때우며, 담배를 줄인 이유를 꾸며내야 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이중의 자유 ― 생산 수단으로부터 ‘해방’된 자유와 동시에 자본에 매인 자유 ― 를 지적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속박이었다.


결국 가난은 인간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킨다. 에런라이크는 월마트에서 “더 비열하고 원망 어린 바브”로 변해감을 목격했다. 오웰은 현대의 노예가 바로 접시닦이라고 단언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인간을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킨다고 갈파했다. 세 사람의 기록은 한 가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돈이 없는 삶은 단순히 불편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비인간으로 만드는 과정 그 자체다.


“빵과 마가린으로 일주일을 버틴 사람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몇 개의 부속 기관이 달린 배에 불과하다.”

— 조지 오웰, 『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


“자본 축적의 법칙은 … 부의 축적이 한쪽 극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다른 극에서는 비참, 노동의 고통, 노예 상태, 무지, 야만, 정신적 타락의 축적이 이루어진다.”

— 칼 마르크스, 『자본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죽은 자는 안타깝다.
그러나 그의 침묵은 여전히 차갑게 말한다.

돈 없는 자유는 허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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