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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백수

-40대 백수-


"밥은 먹었냐? 지금이 몇시인데 아직도 자냐?"


영민은 전화기로 넘어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약간 짜증이 났다. 대충 대답을 하고 눈을 뜬 시각은 1시..


'젠장...'


어제 친구들과 마신 술이 아직도 깨지 않은 듯 한참을 멍하니 방천장을 바라보다가 몸을 겨우 움직여본다. 


영민은 40살이다. 프리랜서라고는 하지만 일이 있으면 나가고 없으면 집에 있다. 집에는 선풍기 조차 더운 바람을 내뿜는 것만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영민은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잘못한 것도 없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일도 없는데 현실은 막막하고 고통만이 가득하다.


잡지와 책들로 어지러이 펼쳐진 작은 방에는 어제 마셨던 맥주와 컵라면이 국물이 남은 채로 흩어져 있다. 1차 모임이 끝난 후 집에서 2차를 한 탓이다. 어제는 뭐가 그렇게 아쉽고 서러워서 그랬는지 영민은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원래 술을 잘 못마시던 영민은 언제부터인가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아 졌다. 밥은 안먹어도 술은 챙겨 먹는 영민에게 어머니는 잔소리가 심하시지만 영민은 못들은 척 했다.


손에 잡히는 데로 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물을 끓이는 동안 영민은 냉장고를 열어봤다. 냉장고 안에는 어제 먹다만 김치가 뚜껑이 열린채로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거라도 있으니 다행이군.."


밥 솥을 열었다. 그러나 밥은 없었다. 편의점에서 즉석밥이라도 사면 좋겠지만 귀찮아진 영민은 라면을 먹기로 했다. 라면에 계란은 사치였다. 멀건 라면에 김치 한조각 얹어 먹으면서 영민은 생각했다.


'이게 뭐하는 짓이람..'


40대가 되자 영민은 희망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래도 전에는 꽤나 잘 나갔었는데 지금은 별볼일이 없어진 느낌이었다. 라면을 먹으며 스마트폰으로 sns를 보니 그들의 웃음기 많은 사진들이 눈에 보인다. 비싼차에 비싼 음식에 아주 바쁘게 사는 사람들과 그에 비하면 영민은 아주 초라한 밥상에 팬티바람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라면을 먹고 있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해본지 언제 였던가..'


영민은 라면을 먹으며 생각에 잠긴다. 모든 희망은 사라진지 오래이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져만 가고 있다. 생활 패턴은 무너지고 낮과 밤이 바뀐 시간 속에서 불어터진 라면과 불어버린 뱃살을 보고 있는내내 한숨만 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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