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알못. 요리하다>
부모님이 외출한 오후, 나는 밥을 먹기 위해 일어났다. 지난밤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맞이한 새벽의 잠깐 눈 감음이 기어코 늦잠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보며 하루 동안 일어난 사건과 사고들을 보며 뇌를 깨워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카레를 만들 수 있는 즉석요리 제품이었다. 후배가 오래전에 준 것인데, 냉장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걸 이제야 발견한 것이다.
라면 물도 제대로 못 맞춰 가끔 라면이 짜장 라면이 될 정도로 요리라곤 전혀 할 줄 모르는 나이지만, (라면도 요리인가? 허허..) 가끔은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봉지를 뜯었다.
인터넷 시대에 정보는 도처에 널려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된다. 유튜브로 카레 요리를 검색하니 수백 개의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정보의 홍수 속에 빠져 죽지 않으려면 배를 만들어 띄우면 된다. 좋은 정보를 습득하는 건 좋은 배를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이것저것 눌러본다.
요리는 영상을 보면서 하는 게 아니라, 영상을 여러 번 본 후 숙지 한 다음에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실패를 덜한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영상을 수십 번 돌려 본다.
이럴 땐, 전에 영상을 미리 보아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밤마다 영상들을 보며 침을 꿀꺽꿀꺽 삼켰던 괴로웠던 지난날들을 이제 보상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니 급 흥분을 감추지 못할 것만 같다.
프라이팬을 꺼내어 불을 켠다. 제품의 뒷면 설명도 꼼꼼하게 읽어본다. 눈에 잘 들어 오지는 않는다.
“기름을 두르고 양파를 대충 썰어 볶아낸다. 노릇하게 익을 때쯤 고기를 넣는다”
냉장고에 양파는 있는데 고기가 없다. 냉동식품을 해동한 후 고기 대신에 넣는다. 대충 그럴듯해 보인다. 한참을 볶다가 물을 붓고 제품인 카레가루를 넣는다. 걸쭉한 게 그럴듯하다. 그런데 밥통에 밥이 없다. 라면을 꺼내어 면을 넣고 젓는다. 물이 부족해 물을 첨가한다. 물 양을 못 맞춘 게 화근이었다. 끓이고 물 넣고 끓이고 또 물 붓고..
그렇게 카레가 끓을 무렵 내 속도 끓는다. 라면은 잘 안 익은 거 같고 물은 계속 줄어들어 간다. 이 순간, 맛에 자신감이 확 떨어진다.
‘맛보고 설마 죽지는 않겠지?’
한 숟가락 입에 넣자 나름 카레 맛이 난다. 테이블에 올려놓고 맛보기 시작한다. 라면은 덜 익었고 국물은 흥건하며 냉동식품은 흐물흐물 하지만 카레의 향이 입안을 감싼다. 망했다고 보기엔 생각보다 맛이 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해서 좋은 결과로 생각지 못하는 건 어리석은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비록 목표가 성공이 아닐지라도 가는 여정이 즐거웠다면 분명 성공한 것일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