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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과 극장 그리고 중년


지하철과 극장

*어제와 그제 본 짜증나는 상황을 고자질을 해보자.


(1)


늦은 저녁 무렵의 지하철안에는 아직도 있어야 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19의 여파는 지하철의 분위기까지 바꿔 놓은 듯 했다. 마스크를 쓴채 여기저기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 만이 집으로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두명의 중년이 들어왔다. 술에 취한듯 보이는 두 사람은 드라마에서나 봄직한 과장과 부장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어깨동무를 한채 한쪽 자리에 털썩 앉더니 낄낄대고 있었다.


"아~ 이제야 술에 취한다"


한명이 마스크를 내리며 한마디를 하자 옆에 있던 사람이 껄껄하고 웃어 제낀다. 옆에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이 없었다. 뭐가 신났는지 둘이서 낄낄 거리더니 곧이어 한명이 내리기 위해 일어섰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비틀거리며 내렸고, 내리지 않은 나머지 사람은 지하철 문 앞에서 오랜 연인을 마지못해 보내는 남자의 모습으로 손을 흔들며 여러번 인사를 했다. 지하철이 닫히자 유리창으로 손을 쿵쿵 치면서 잘가라는 시늉까지 하며.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나는 두 남자의 '더러운 우정'에 토악질이 날것을 겨우겨우 참으며 집으로 향했다.





(2)


다음날, 오후에 잠깐 시간이 비어 영화관을 찾았다. 얼마 기간이 남지 않은 영화 티켓을 소모하기 위함이 우선이었지만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할 뿐이었다. 10분 정도 먼저 도착한 극장의 외부에는 사람이 없었다. 오후 시간이라 그런지 바이러스의 여파 때문인지는 몰랐지만 나도 마스크를 쓴채 만일을 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두명의 중년 남자 둘이 극장입구로 들어왔다. 잠바를 걸친 두 남자의 모습은 시간을 때우러 온 모습이었다. 극장을 처음 온 사람처럼 자리표를 확인하며 자기들 끼리 낄낄 거리면서 웃고 있었다.




"몇 번 자리야?"


"아무데나 앉으면 되지 뭐"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 목소리는 극장의 대기실에 널리 퍼졌다. 그들의 큰 목소리보다 낄낄 거리고 웃는 모습이 더 신경 쓰였다. 극장의 문이 열리고 좌석에 위치를 하자 그둘도 따라서 들어왔다. 나는 스크린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 중년의 남자는 극장의 중간쯤에 자리를 잡았다. 연인 한명과 영화를 보러온 아주머니 한명이 마스크를 쓴 채 앉아 있었다.




중년 남자 둘은 한쪽에 자리를 잡더니 영화가 시작할 때까지 사담을 나누고 있었다. 목소리는 신경이 쓰일정도로 컸지만 아직 광고중이라 참았다. 둘의 모습은 스파이 둘이서 암호를 나누는 모습으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짜증이 올라왔지만 참느라 애썼다. 영화를 시작하자 그들의 목소리는 바로 잦아 들었다.




"띠리리리~~~"




영화가 끝날 무렵 울리는 전화. 그뒤로 들리는 목소리는 나를 아연 실색하게 만들었다.




"어!! 그래, 나 지금 영화보고 있어!!"




아까 나를 신경쓰이게 만들었던 중년 남자 중에 한사람이 극장의 중간에서 벌떡 일어서서는 전화를 받으며 밖으로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자신의 통화를 온 세상에 알리기라도 하듯이.




중년의 세상은 내가 알지 못하는 또다른 세상일까? 배려심 없는 안하무인의 세상? 나의 미래의 모습도 저렇게 될까봐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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