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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장의 사진에 담긴 내용은?


사진 한장이 눈에 띕니다.


긴박한 군인의 표정. 그의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군인은 바로 앞에 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굉장히 경계를 하는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와 군인의 사이에 놓인 철조망이 긴박한 상황임을 암시해줍니다. 그에 비해 아이는 안아 달라는 듯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아이의 표정은 알 수 없지만 겁에 질려 있다고 느껴집니다.







이 긴박한 사진은 무슨 내용을 가지고 있을 까요?




베를린 장벽은 냉전의 상징으로

냉전 시대의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이 되었으며 베를린 시내를 기점으로 1961년 부터 1989년의 28년간 남북으로 나뉘는 거대한 벽이 존재하였습니다.








벽이 건설된 것은 1961년 8월 31일.


동독은 갑자기 동서 베를린의 통행을 차단하고 서 베를린 주변을 모두 철조망으로 둘러 쌓고 콘크리트벽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서베를린과의 국경은 폐쇄 되었으며 동독 병력과 노동자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길게 3개의 서부지역에서 156킬로미터에 달하는 철조망과 울타리를 설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서쪽과 동쪽의 베를린을 나눴습니다.


이것은 불만을 가진 동독 시민이 대량으로 탈출하는 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많은 시민들이 가족과 헤어지거나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따라서 벽을 기어 올라 월경하려는 사람들이 대량으로 발생 하였습니다. 하지만 철창을 넘기도 어려웠을 뿐더러 벽을 넘으면 즉시 사살된 사람만해도 130명가량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아이의 아버지는 서독의 소년과 친척을 방문하였고 나머지 아이 가족은 동쪽에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베를린 장벽의 설치로 인해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은 분리가 되어야만 했죠. 아버지는 소년이 어머니와 함께 자라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소년이 군인을 들어 올린 울타리로 보냈던 것입니다.


동독 정부의 명령으로 동 베를린 사람은 아무도 없어야했지만, 군인은 소년에게 다가갔습니다. 군인의 임무는 즉시 사살의 명령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주변에 발각이 되면 군인의 목숨조차 위태로웠을 것입니다.


군인은 아이를 들어 올려 철조망 위로 넘겨 아이가 어머니에게도 돌아가는 것을 도왔습니다.


이후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가 처벌을 받았는지 여부는 알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진의 제목도


"No one knows what became of him"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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