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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케 베르나도트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는...

폴케 베르나도트를 아십니까?




유대인을 구출한 인물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마도 오스카 쉰들러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영화인 쉰들러 리스트도 한몫을 한게 아닌가 싶은데요. 그 외에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인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 저의 관심을 끄는 인물이 한명 있었습니다. 바로 폴케 베르나도트 입니다.




스웨덴 왕가 출신으로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다가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인물입니다. 그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는 다른데 있습니다. 휴머니스트였지만 휴먼에게 살해를 당했기에...


스웨덴의 왕족들은 대부분 예술에 관심이 많고 저서를 집필하는 등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사는 경향이 대부분이었던것에 반해 그의 행적은 반대의 성향을 띈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에는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정치에 관여를 했다고 하는데요. 상을 바꾸고자 하는데에 남들과는 다른 관심있었던것 같아요. 그냥 편하게 살지.그는 스톡홀름에서 학교를 다녔으며, 다른 왕족들 처럼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스웨덴 기병에 입대 하였으며 소령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는 평생 스웨덴에서 보이스카웃을 조직하고 활성화 하는데 힘썼으며 이후 적십자사 부총재까지 하게 되었다고 해요.


폴케 베르나도트가 알려지게 된 이유는 바로 포로의 교환 문제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이 일어나자 스웨덴 정십자회부회장이었던 그는 독일군과 연합군의 포로 교환을 중재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43년 그는 만명이 넘는 포로를 스위스에서 교환하는데 성공 하였습니다. 이후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포로들을 구출하는 역할도 맡게 됩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측근인 하인리히 히믈러를 접촉하여 폴란드인과 유대인까지 모두 3만 1천여명이 풀려났는데요. 당시 히믈러는 폴케 베르나도트를 대연합군 협상창구로 여기고 있어서 가능했다고 해요.


이때 이루어진 것이 하얀 버스 계획입니다. 대량의 버스들의 이동에 폭격을 염려하여 버스를 모두 흰색으로 칠하고 적십자 마크를 그려 넣었습니다. 초반에는 오인으로 인한 폭격으로 부상당한 사람들을 데리고 올 수 없었지만 이후 폴케 베르나도트의 협상으로 중증 환자도 데리고 오게 됩니다.


이 작전으로 수 많은 이들을 구하게 된 폴케 베르나도트는 팔레스타인 건국 문제에 있어 UN의 중재자 역할을 받아들여 문제에 개입을 하게 됩니다. 과거 유대인을 구해냈던 그의 행적 때문에 그를 친이스라엘 인사로 생각했던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자 폴케를 제거했다는 의혹이 존재합니다. 이스라엘측 극단주의자들은 그를 암살하고 말았습니다. 일행이 탄 차량에 총을 쏴 즉사 시킨 것이죠. 이 암살자들은 이후 이스라엘 정부의 핵심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암살을 주도한 이츠하크 샤미르는 나중에 이스라엘 총리가 되었거든요. 그러니 스웨덴에서는 폴케 베르나도트의 죽음에 이스라엘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고 합니다. 


폴케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는 유대인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테러리스트들에게 암살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 대전때 유대인들의 목숨을 구했지만 유대인에게 목숨을 잃게 되다니오.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유분수지..."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의 일은 당시 미국측에서 보냈던 랄프 번치가 이어 받았으며 이후 번치는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폴케가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일을 했을 텐데.. 아쉽습니다. 이럴땐 휴머니스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휴먼의 잔인하고도 악한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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