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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한 회사의 결말

이 글의 원래 제목은 '혁신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어릴때 가족끼리 사진을 찍는 날은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하루 날을 정해서 동물원등을 갈 일정을 잡고 전날 도시락을 쌌습니다. 사진을 찍는 날은 매우 특별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여기저기 장소에 서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는 날은 일년에 몇번 없는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게다가 사진을 바로 확인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현상소에 맡겨 며칠을 기다렸다가 여러장의 사진을 받아오면 그때의 추억을 고스란히 곱씹는 역할을 하기도 했죠. 가끔은 사진에 빛이 들어가 잘못찍힌 것들도 있었지요. 아직도 필름 카메라 하면 저는 코닥이 떠오릅니다. 노란색 바탕에 검정색으로 새겨진 '코닥'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소중한 순간을 코닥 모멘트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하네요. 그만큼 코닥은 전세계인에게 단순한 상품이 아닌 추억을 파는 기업이었고 거의 모든 가정에서 볼 수 있는 대중 브랜드였습니다.


그로 부터 오랜 기간이 지난 지금은 사진을 아무나 찍어서 바로 확인할 수 있고 인터넷에 올릴 수 있는 세상, 스마트 폰의 보급으로 인한 디지털 사진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이 없는 세상을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는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 즉, 1973년 젊은 엔지니어였던 Steven Sasson이 Eastman Kodak에 입사했을 때 개발된 것입니다. 코닥에 입사한지 2년 후 그는 디지털 사진을 발명하고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었습니다.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프로젝트는 그렇게 큰 프로젝트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Mr. Sasson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몇초 만에 전세계에 이미지를 보내고 수백만명과 공유 할 수 있는 프로세스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카메라 그 이상의 기술이었습니다. 필름과 종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정지 사진 이미지를 캡쳐하고 표시할 때 소모품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완전 전자식 카메라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무도 텔레비젼에서 자신의 사진을 보고 싶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쇄물은 100년 넘게 우리와 함께 했고 아무도 인쇄물에 불평하지 않았는데 왜 텔레비젼에서 자신의 사진을 보고 싶어하죠?"


하지만 이 혁신은 오히려 주변의 많은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코닥이 지배하던 산업을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었고 전문 사진가들이 자신의 직업이 망가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디지털 혁명은 Kodak에서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코닥 지도부는 디지털 카메라가 기존의 비지니스를 잠식 할 것을 두려워 하였습니다.


'대단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는 마세요' 경영진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저희가 카메라를 만들었지만 이미 논쟁은 끝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코닥은 이를 전혀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카메라는 결코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의 발명은 필름을 판매할 수 없게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가장 먼저 개발한 회사는 코닥이었습니다.

우리는 혁신이 번영을 주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종종 혁신은 예기치 않은 발견에서 진행이 되기도 합니다. 전자렌지, 포스트잇, 비아그라등의 발견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혁신을 육성할 것인가 억제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조직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위험으로 인식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코닥 경영진은 무게가 무겁고 처리시간이 느리며 해상도가 낮은 초기 디지털 카메라의 결함에만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충분히 좋은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보지 못했고 수백만 잠재 소비자에게 유용할 기술임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미국의 2위 대형 서점인 보더스가 아마존에 밀려 파산하고

비디오와 DVD 대여점인 블록버스터가 온라인 기반의 넷플릭스에 밀려 쇠락.

코닥도 캐논과 니콘, 소니에 밀렸습니다.

물론 워크맨과 디스크맨에 치중해던 소니도 애플의 아이팟에 시장을 내주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지속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혁신적인 끊임없는 투쟁이 필요합니다. 결국 코닥은 디지털 사진 혁명을 주도할 기회를 날리게 됩니다. 회사를 대표하고 100년 이상 꾸려온 필름 카메라의 상징성이 훼손 될 것을 우려하여 디지털 카메라 출시는 주력 사업이 붕괴 된다는 판단이 앞섰던 것입니다. 필름 사업 기득권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했던 것이 130년 몰락의 길을 가져왔습니다. 한때 세계 필름 시장의 90%의 점유율을 기록했던 코닥은 각종 사업무를 매각하고 특허 기술까지 팔았습니다.


물론 코닥도 몰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것은 아닙니다. 1981 소니가 디지털 카메라를 발표하자 코닥은 디지털 사진 기술이 가져올 위협에 대해 상세하게 분석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판단하에 계속 필름 사업에 치중했죠. 1990년대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디지털 이미지 그룹으로 사업 구조를 조정하는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다. 1995 코닥의 기업 가치는 133 달러로 세계 4위에 오르기도 습니다.


하지만 1998년경 일본의 보급형 디지털 카메라가 출시 되자 필름 카메라는 점점 사장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코닥의 입지는 급속도로 줄어 들었습니다. 다른 기업이 디지털 카메라를 내놓기 시작한 1994년 출시를 하기도 했습니다만 오히려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늦게 진출하여 캐논과 니콘등에 밀리게 되었고 코닥은 결국 구식 필름 카메라 만드는 기업 이미지를 바꾸지 못했습니다.


결국 코닥은 2012년 미국 연방 법원에 파산을 신청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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