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빵을 막 좋아하는 편은 아니야.

근데 우울해서 왜 빵을 사는지는 알 것만 같은 거야.

by 뱅울

언젠가 남편과 함께 소파에 앉아 브이로그를 보는데 그 속에서 사람들이 계속 밥은 안 먹고 빵만 먹는 거다. "와 빵 진짜 좋아하나 봐." 하자마자, 남편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그 눈빛에서 '너도 잖아.'를 읽었다. 그리고 바로 변명 같은 대답을 했다. "근데 난 솔직히 빵을 막 좋아하는 편은 아니야."

대구집에 가서 엄마랑 동생이랑 셋이 있는데 빵 얘기가 나왔다. 동생이 배달로 빵을 시켜 먹을 거니까 골라보라고 했고, 나는 일단 핸드폰을 받아 들긴 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빵이 없는 거다. 계속 스크롤 하며 아무것도 못 고르는 나를 보며 "아직도 고르고 있냐"는 동생의 핀잔에, 대답했다. "이렇게 리스트만 보면 바로 고를 수 있을 만큼 난 빵을 막 좋아하는 편은 아니야."


정말 웃기게도, 이 두 상황에서 나는 세 명의 사람에게서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말을 들었다. 웃기지도 않는다는 표정으로, "빵 좋아하잖아!" 이 세 사람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데, 나는 빵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이 사람들은 날 빵순이로 알고 있잖아? 싶어서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다. 대체 나의 무엇이 이들을 이다지도 오해하게 했을까. 그걸 알게 된 건 이 상황을 겪고 나서 마주한 첫 겨울이 오고서였다.


겨울에 나는 왜인지 양식이 좋다. 수제비나 칼국수 같은 게 물론 있지만, 오히려 당기는 쪽은 파스타, 수프, 샌드위치 쪽인 것을. 그리고 주말만 되면 그렇게 샌드위치가 먹고 싶은 것이다. 근데 그냥 식빵 사이에 채소를 그득 넣고 소스를 잔뜩 뿌린 것 말고. 제대로 발효되고 성형되어 구워져 나온 따끈한 빵들-이를테면, 치아바타, 바게트, 깜빠뉴 같은 것들-을 반으로 가르고 그 속에 적당히 짭짤한 햄(잠봉같은 것)과 몇몇 루꼴라, 가끔은 에멘탈치즈 같은 것을 넣고, 소스로는 홀그레인 머스터드 정도면 충분한. 그런 샌드위치를. 작년(25년) 12월에는 정말이지 참고 참다가 다른것으로도 대체 해 보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한동안 바게트 샌드위치 가게를 찾았다. *바게트도 그냥 바게트가 아닌 것을 찾고 싶었으므로, 오래 걸려 찾아간 한 카페에서 환상적인 바게트 잠봉뵈르를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입 베어 물자마자 이것이 행복과 평온 사랑과 평화가 아니면 무엇인가 생각했다. 정말 행복한 표정을 하며 먹는 날 보고 남편이 말했다. "빵 좋아하잖아."

tempImageZyJNXd.heic 환상적인 바게트 잠봉뵈르와 치아바타 샌드위치

빵순이는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범주 내에 들어온 빵을 좋아하고, 굳이 검색까지 해가며 추구하는 항목에 모두 부합하는 빵을 마주하면 세상 우울과 슬픔을 다 물리쳐버릴 수 있는 나. 그래서 행복해 보이는 나를 보며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내가 빵을 좋아하는 줄 알고 있는, 그러나 나 스스로는 그 범주가 좁아서 다수의 빵을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빵을 막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고 말하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말이 유행했더랬다. "나 우울해서 빵 샀어." 우울해서 빵을 그러니까 왜 사냐는 질문을 오히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사람이 우울함을 해소하는 방법이 빵을 먹는 건가 보지. 뭘 그런 것까지 물어; 근데 그 와중에 무슨 빵을 샀는지가 궁금해지더라고. 달콤한 빵을 산 걸까? 달콤함으로 우울을 녹여보려고? 겉이 바삭한 빵을 산 걸까? 콰작콰작 씹을때마다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려고? 쫀쫀한 빵을 산 걸까? 쫀쫀한 빵을 먹는 동안에 다른 생각을 안 할 수 있잖아!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며 우울함과 빵을 연관 지어보면서 말이다. 우울해서 빵을 사는 건 아무래도 너무 이해되는 행동이니까.

tempImageGR6XSZ.heic 241231 한 해를 마무리하며 그렸던 색연필 그림에도 등장한 빵.

이 브런치 북에서는 약 3달의 시간 동안 총 열 가지의 빵과 빵인 척 하는 케이크를 소개하며 우울과 슬픔을 해소한 경험을 나누어 볼 생각이다. 빵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을 만나도 좋을 것 같고, 우울과 슬픔을 해소하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도 좋을 것 같다. 모두 행복으로 빵빵해진 날들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쓰고 그려봐야지. 아,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자면,


오해하지 않기를, 난 진짜 빵을 막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 이건 본문에서 더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