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날 버스를 함께 타고 온 연주, 혜지 그리고 알베르게에서 만난 스페인 유학생 준훈이와 예인이와 함께 1일 차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같은 속도로 걸어갔지만 개인마다 체력 차이가 있다 보니 금세 거리가 멀어졌다. 우리는 언젠가 또 만나자는 기약을 하고 각자의 속도에 맞춰 길을 걸었다. 나는 걷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무서운 속도로 치고 나갔다. 1일 차 코스는 산맥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산티아고 순례길 코스 중에서도 어렵기로 소문이 나있다. 나는 걷기 시작한 지 5시간 만에 1일 차 목적지인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시작할 때는 5명이서 시작했는데 도착할 때는 나 혼자였다. 뭐든지 빨리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기 때문에 풍경 따위는 뒤로 한 채 목표에만 집중했다.
도착 후 내일을 위해 텐트에 일찍 들어가 쉬었다. 저녁 7시쯤 됐을까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처음 출발할 때 함께 했던 애들의 목소리였다. 중간에 혜지가 발목 통증을 호소해서 포기할까 했지만 서로 부축해 주며 목적지까지 오느라 늦은 밤 도착했다고 했다. 비록 늦었지만 오는 내내 풍경이 너무 예뻐서 사진도 찍고 행복했다고 말하는 애들의 말을 들으면서 오늘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나는 목표에 빠르게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오는 내내 행군하듯이 목적지만 보고 걸었다. 근데 내가 왜 그렇게 걸어야 했을까? 이유는 없었다. 나도 행복하기 위해서 여행을 하는 것인데 주변 풍경도 즐기고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면서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 밤 혼자 텐트에서 생각했다. 속도보다는 행복이다. 행복을 중점으로 여행하자. 그다음 날부터 나는 속도를 늦췄다. 주변의 풍경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대화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버스를 같이 탔던 연주, 혜지와 매일 같은 목적지에서 만나게 됐고 우리는 33일 동안 함께 걸어 완주에 성공했다. 첫날 우연히 만나 사람들과 33일을 함께 걷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렇게 우린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산티아고 인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