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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송비 Jun 23. 2018

나의 음악 세계

어린 시절 이야기

내 음악의 역사는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하면 될 것 같다. 나의 누나는 8살로 당시 국민학교 1학년이었고, 6살인 나는 누나를 따라 국민학교 안에 있는 병설 유치원에 다녔다. 놀이라고는 동네 형들과 놀거나 집에 있으면 티비 시청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무엇을 봤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티비가 안 나오는 시간이 많은 때였고, 채널도 7, 9, 11, 13 (+ 2)가 전부였던 시절이다. 볼 것이 티비 뿐이니 티비를 매우 열심히 봤던 것 같다. 

하루는 유치원에서 돌아가면서 앞에 나와 노래를 부르고, 선생님이 그것을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하는 시간이 있었다. 다들 수업시간에 배운 동요를 부르는 와중에 나는 변진섭의 '희망사항'을 불렀다. 두 소절 즈음 불렀을 때 선생님이 내 마이크를 빼앗아 가서는 "땡!"이라고 하고 나를 자리로 들여보냈다. 다음 날은 녹음한 테이프를 다같이 다시 들었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땡!" 다같이 웃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관심병이 있었나. 아마도 다른 가요들도 알고 있었겠지만, 내가 부른 최초의 가요로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당시 2,500원을 하던 최신 가요 믹스 테잎을 약 한 달 간격으로 주기적으로 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내내 샀던 것 같다.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꽤나 열심히 듣고 외우고 다녔다. 테이프에 들어있는 부클릿(?)이 너덜너덜해져서 조각이 나거나, 꺼내서 들고 다니면서 보다가 분실되고는 했다. 학교 앞에서 700-XXXX 전화 업체에서 나눠주는 무가지를 꼬박꼬박 챙겼다. 가요톱텐을 매우 열심히 봤고, 가수들이 나오는 주말 예능도 재밌게 봤다. 최신 가요를 늘 줄줄 읊을 수 있었다. 맨날 집에서 노래만 듣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정말 열심히 들었잖아.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가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적이 있다. 당시 R.ef에 빠져있던 나는 <상심>의 앞부분 연주를 생각하며 배울 거면 바이올린을 배우겠다고 했다. 피아노는 학원에 가서 학원에 있는 피아노를 치면 되지만, 바이올린은 어떻게 배우는지 몰랐고 엄마도 딱히 피아노(혹은 기타)가 아니면 가르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컴퓨터 학원에 다니게 되었고, 그 때 피아노 학원을 선택하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컴퓨터 학원이 아니라 피아노 학원을 다녔어야 했다. 그랬으면 음악맨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중학교 무렵엔 초등학교 때만큼은 노래를 잘 안 들었던 것 같다. 빈 시간이 많지 않았고, 친구들과 게임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친구들끼리 노래방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다시 노래를 열심히 들었다. 그 무렵부터 노래방용 노래를 들었다. 높은 음을 부르는 사람이 노래방에선 승자였기 때문에 발라드를 많이 들었는데, 그 때의 나는 고음불가여서 잘 부를 수 없었다. 별로 높지 않은 발라드를 부르거나 랩을 잘하는 친구를 따라서 랩을 했다. 새로운 노래방 레파토리를 파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남들이 다 아는 노래를 부르면 자꾸 마이크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노래방 책을 열심히 보고 좋아하는 가수의 유명하지 않은 노래들을 찾아 들었다. 초고속 인터넷이 생기고 '소리바다'를 한창 사용하던 시기였다. 노래를 찾아듣는 게 어렵지 않았다. 요상한 노래들을 꽤 많이 알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노래방이 거의 유일한 놀이 수단이었다. 고음 불가인 내가 택한 길은 윤도현 밴드를 필두로한 록음악이었다. 소리 지르고 목을 갈아내는 건 꽤 잘했다. 시끄러운 노래방은 그때 익힌 것들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굿모닝 팝스'라는 해외 팝 동아리에 억지로 들어가게 되었다. 중학교 때 알던 선배를 고등학교에 들어가 만났는데 자기 동아리에 들어와서 인원 수 좀 채워달라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들어갔다. (쓸데 없는 얘기지만 그 선배는 대학에 가서도 만나게 되었는데, NL 단과대 학생회장 후보가 되어 있었다. 선배! 다신 만나지 마요.) 힙스터 동아리였는데 그것도 모르고 나는 바보 같이 컴퓨터 동아리 활동만 열심히 했다. 인터스텔라를 찍는다면 컴퓨터 동아리에 들어가는 나에게 그러지 말라고 소리칠 것 같다. 해외 팝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었어야 했는데! 그 시절의 나는 해외 음악 마저도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는 것들만 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지금은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 아마도 이름에 '경'자가 들어갔던 것 같은 친구가 크라잉넛의 새 앨범을 듣고 있었다. 경석이(대충 부르겠다)는 노래가 너무 좋았는지, 나에게 "테이프 복사해줄까?"라고 했다. 나는 복사를 받은 그 테이프를 엄청 열심히 들었다. 크라잉넛을 마이너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마이너한 밴드 음악의 앨범을 통으로 다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크라잉넛을 안 들어본 건 아니지만 노래방에 있는 노래만 찾아서 들었기 때문에. 경석이랑 계속 친하게 지냈으면 재밌었을 것도 같다. 친구들에게 말은 안 하지만 종종 공연 보러 서울에 가는 그런 친구였을 것 같다. (쓰고 보니 이름이 경식이었던 것도 같다.)

재수를 하던 해에는 한동안 '서태지'가 수식어로 따라 다니던 넬의 앨범을 사서 들었다. 이때부터 슬슬 밴드 음악을 듣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때부터 시디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대학에 와서 밴드 음악을 듣는 여러 사람들을 만났지만, '노사장'(유튜버 그분 말고 제 친구입니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으며 노래를 들었다. 20대의 음악 생활은 언젠가 다시 쓰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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