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먹다 생각난 옛날 이야기
밤비가 회냉면이 먹고 싶다고 하여 점심에 회냉면을 먹으러 갔다. 검색을 통해 그 집에서 파는 회냉면이 '명태회냉면'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명태회가 명태회무침이었고, 코다리에 가까운 맛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래도 명태회무침이 나쁘지 않았고, 냉면도 동네 냉면집이 낼 수 있는 맛 중에선 최상이어서 만족하면서 나왔다. 여름이 가기 전에 한번 즈음 더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보통의 비빔냉면이 다 그렇듯 매웠다. 날씨도 매우 더운데 매운 냉면을 먹고 있자니, 문득 2006년에 강남 어딘가에서 먹은 비빔냉면이 떠올랐다. 2학년은 매우 암울한 시기여서 남아 있는 기억이 많지 않은데, 전후의 일들은 기억이 나지 않고, 냉면을 먹은 날의 기억만 똑 떨어져서 단편적으로 남아있다. 대학교 2학년이었고, 여름방학 중이었다. 반 선배 1명과 옆반 선배 2명과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집회에 가기로 했던 날이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별로 안 가고 싶었을 것이다. 옆반 사람 2명은 집회에 처음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같이 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평택으로 가던 길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강남역 어딘가에서 만나 버스를 타고 평택 어딘가에 내려 한참을 걸어서 집회 현장에 도착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더운 날씨에도 사람이 많았다. 경찰이 그 주위를 삥 둘러 서 있었고, 전경버스도 줄줄이 서 있었다. 이미 집회는 한창이었다. 경찰은 우리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집회의 현장이란 안으로 들여보내주는 것도 밖으로 내보내주는 것도 경찰 마음이기 때문에 오늘 안에 못 나갈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 못 나갈 경우 오늘 처음 온 이 두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어떻게 할지, 내일은 어떻게 될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런 걱정과 달리 집에 오는 길에 막아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며칠째 그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그곳에 두고 (내가 두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집회 현장을 나왔다. 오늘 처음 온 옆반의 그 두 사람 덕분에, 일찍 먼저 올 수 있었다. 선배도 어쩔 수 없이 올라오는 것처럼 했지만 사실 먼저 올 수 있어서 좋아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은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가서 상당히 막혔고, 강남역까지 오는 것을 포기하고 양재 어딘가에서 내렸던 것 같다. 저녁 시간인데 밥이나 먹고 가자고 하여,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냉면집이 보여서 들어가 냉면을 먹었다.
언제부터 비빔냉면을 좋아했는지 모르겠는데, 그날도 비빔냉면을 시켰다. 라고 쓰고 보니 물냉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4명이 가서 4명이 다 비빔냉면을 시키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 다대기가 엄청 매웠나? 싶기도 하다. (다대기가 매운 물냉면은 신천역 부근에 '해주냉면'이 있다.) 아무튼 4명이 모두 눈물 콧물 다 빼가며 냉면을 밀어넣었다. 내가 먹은 냉면 중에 가장 매운 냉면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꾸역꾸역 그걸 끝까지 다 먹었다. 밥을 두 번 사먹을 수 있을만큼 넉넉한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남길 수는 없었다. 그날 깨달은 건 매운 걸 먹을 땐, 매워하면서 쉬지 말고 계속해서 입으로 넣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눈앞의 고통이 한정 되어 있다면 시간을 단축시키는 게 괴로움을 더는 방법이었다. 냉면집을 나와 맵다맵다 하면서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