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나인에서 영화를 연속으로 2개를 봤다. 둘 다 긴 편은 아니라 보고 나서 크게 힘들진 않았다. 두 영화를 합쳐 상영관에 10명이 채 안 되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계속해서 영화관을 운영해주시는 아트나인에 매우 감사하다. 영화를 보고서 밥을 먹고 출근을 했다. 원래 안 가려고 했었는데 딱히 해야 할 것이 떠오르지 않아서.
싱어송라이터 이랑 님께서 하는 노래 만들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거기서 내가 무슨 노래를 만들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주제를 정해주셨다. '내가 12시간 후에 죽는다면'을 주제로 노래를 써보라고 했다. 딱히 죽는 것에 미련이 없었다. 당시에는 고양이도 부모님이랑 살고 있었고,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 무렵에는 (출시 때문에) 1년 넘게 오버워킹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누가 나의 죽음을 아쉬워할까,에 대해 생각해보면, 가족과 친구 몇 명이 전부였다. 지금은 같이 사는 사람도 있고, 고양이도 있어서 그때랑은 입장이 많이 다르다.
죽은 후에 나의 정신 세계가 남아 있다면 죽음의 원인이 궁금할까.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면 별로 궁금하지 않을 것 같고, 그렇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죽어 있다면 궁금할 것 같다. 원인을 알고 났을 때, 화가 날 수도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딱히 사는 것에 이유가 없다고 해도 살아야 할까. 나는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서 그냥 살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라면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누군가를 죽이면 안 되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죽음을 예견하고 있다면 무언가 달라질까. 아마도 달라질 것이다. 적어도 출근을 하진 않을 것 같다.
어렸을 때는 귀신이 너무 무서워서 밤을 싫어했다. 방에 혼자 있지 않아도, 식구들과 같이 잠에 들어도 저쪽 창문에서 귀신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상상을 많이 했다. 자다가 중간에 깨는 날은 그게 너무 무서워서 다시 잠들기 위해 노력했다. 납량특집을 여름에 하는 이유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아 더운 날씨에 시원해지라는 것인데, 무서워서 등골이 서늘해진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그리고 여름은 밤이 짧아서 오히려 좋았다. 겨울엔 귀신 얘기 같은 건 하지 않지만, 가만히 있어도 싸늘하고 밤이 너무 길어서 귀신 생각을 일찍부터 해야 하는 게 너무 싫었다.
중학교 2학년 정도 부터는 점점 귀신이 안 무서워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여전히 공포 영화는 좋아하지 않지만, 어쩌다 보게 되더라도 꿈에 나온다거나 집에 가는 길이 (귀신 때문에) 무섭진 않다. "왜 돈을 내고 무서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너무 공감되어 공포 영화는 멀리하는 편이다. 가끔 볼 때도 있는데, 대부분 프렌드쉽을 쌓기 위해 봤다. <무서운 집>을 모여서 봤던 게 생각난다.
한 2주 정도 열대야가 지속되다가 선선한 밤이 찾아왔다. 여름이 끝났다. 여전히 덥긴 하지만, 최고점을 찍던 때의 더위가 아니다. <굿바이 썸머>를 보고 싶었던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개봉을 8월 중순에 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이래저래 안 됐을 것 같은 영화이긴 하다) 왠지 영화를 보고 나면 '아, 여름이 끝났구나' 싶을 줄 알았는데, '어, 영화, 음, 그래.'했다. 어쨌거나 여름이 가는 건 아쉬운 일이다.
봄을 가장 좋아하는 건 여름이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춘분을 좋아한다. 해도 길어지고 날도 더워질 것이기 때문에. 하지부터는 겨울이 올 것을 생각하고, 추분은 정말 너무 싫다. 그나마 동지가 되면 다시 해가 길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다. 그렇게 좋아하는 춘분과 하지 사이에 위염을 앓았다. 이제는 그랬었나 싶을 정도로 많이 괜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여파가 남아 있어서 조금만 좋지 않아도 관리를 해주고 있다. 안 아팠으면 좀 더 재밌는 봄이었을까. 적어도 커피가 좀 더 맛있긴 했겠지.
그렇다고 더위에 엄청 강하진 않다. 더위가 처음 시작되는 때는 항상 늘어져 있었던 것 같다. 덥다덥다하면서 아무 것도 못하는 시기가 항상 찾아오긴 한다. 아무리 그래도 추운 것보다는 낫다. 그냥 늘어져 있으면 되니까. 고등학교 3학년 여름에도 그렇게 늘어져 있다가 재수를 하게 되긴 했다. 재수할 땐 그래서 여름을 잘 나려고 무척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입맛 없어도 밥 열심히 먹고 낮에 퍼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 이후로는 딱히 여름에 노력해야 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여름을 선호하게 된 것 같다.
영화는 <밤이 문이 열린다>가 더 좋다. <굿바이 썸머>는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다. 다음주에는 <우리집>, 그 다음 주에는 <벌새>를 볼 것이다. 좋을 예정인 영화가 풍년이라 좋다. 상영관이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