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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소요 Aug 29. 2023

방황 대신 유랑이라 불러주오


나는 직업유랑인이다


 나는 스스로를 직업유랑인이라 부른다. 앞으로 유랑에 대한 기록을 차곡차곡 담을 예정이다. 부디 직업 유랑인의 삶을 살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공감과 위로를 건네줄 수 있길 바라며.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수없이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고, 끊임없이 도전과 실패를 거듭했다. 그렇게 13년이란 시간 동안 많은 직업을 거쳐왔다. 알바부터 프리랜서까지 고용 형태는 물론 직장의 규모까지 다양했다. ​내가 직업유랑인이 된 이유를 설명하자면 끝도 없지만, 몇 마디로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일하며 자아실현 하고 싶은 나>

 20대 중반으로 접어들었을 때 직업 사춘기가 찾아왔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알바 근무를 매듭짓고 첫 직장에 입사하게 됐는데, 이럴 수가. 직장인의 현실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나도 달랐다. 대체 무엇이 나를 괴롭게 하는가, 계속해서 생각하고 물어봤고 그 답은 오래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바로 일하며 자아실현을 할 수 없는 것에서 오는 좌절감이었다.

자아실현이란 나의 능력치를 알고
그것을 충분히 발휘해
내가 생각한 이상에 가까워지는 것을 말한다


  대학생 때는 영상 학회 소속으로 활동했다. 학회에서는 실습제, 방송제를 주최했고 그 외에도 각종 이벤트가 난무했기에 강의가 끝나면 동기들과 학회실에 모여 늦은 시간까지 작품을 만드는 피곤한 나날을 보냈다. 영상을 제작하는 과정은 말도 안 되게 힘들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을 때의 쾌감은 모든 것을 잊게 하는 힘을 가졌다. 그렇게 영상 만드는 일이 적성에 맞다는 생각을 하며 4년여간의 대학 생활을 보내다가, 어느 날 지도 교수님의 추천으로 프로덕션에 취업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당시 대학원 진학과 취업의 기로에 서있었기에 많은 고민 후 결국 면접을 보기로 했고, 이후 입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일터는 작품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상품을 만드는 곳이다. 고객의 요청 사항에 맞춰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는데, 그보다 우선적으로 내부 결재를 통과한 결과물만이 고객에게 다다를 수 있다. 당시 직장은 소기업 중에서도 초소기업이었기에 대표가 내 직속 상사이자 사수였다.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던 그와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내 역량을 펼치기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는데, 발표 공포증 탓에 손과 목소리를 덜덜 떨면서도 회의를 진행하고 밤늦게까지 아이디어를 정리해 의견을 어필해 봤자 어차피 채택되는 것은 대표의 아이디어였다. ​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수동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가치관까지 바꿔가며 대표의 취향에 맞는 말만 하게 되었다. 주체적인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수준에까지 도달하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주변인에게 물어봤다. 당신은 일하면서 자아실현을 하고 있냐고. 답변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자아실현? 그런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일은 돈 벌려고 하는 거지.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지 마.”​


 오랜 시간 직장인으로 살아온 가족, 같은 업계에 먼저 발을 디딘 선배, 이른 취업으로 연차가 쌓인 친구, 외국계 기업에 다니던 친구… 내 질문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 당연히 내게도 돈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일과 자아실현을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해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혹시 내가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잡히지 않는 것만 쫓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자 바닷가 한가운데서 둥둥 표류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가 속한 무리를 등지고 저 멀리 보이지 않는 어딘가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직장으로 혼란스러워하는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일지 조언해 주기도 했고, 자아실현을 위한 방법을 함께 고민해 주기도 했다. 힘든 상황에서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과 감정을 갈무리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그때 결심했다.

내가 직장을 고르고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

제1순위 가치로 둘 것은

’ 자아실현‘이라고.


​​​

<배울 게 없다면 성장도 없다>

 “넌 로또 당첨되면 뭐 할 건데?”라는 질문을 받으면 평생 공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배움에는 한도도 없고 끝도 없다. 그리고 나는 지식과 경험을 체득하고자 하는 욕심이 많다.

 이걸 직장에 대입해 보자. 만약 직장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면 그곳에 계속 다닐 이유가 없어진다. 다르게 말해서, 배울 것이 더 많은 회사나 직업이 있다면 이직, 전직할 이유가 생긴다.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곳이라도 그만두는 것이 좋다.)​ 물론 이 말이 무조건 맞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내가 가진 능력을 활용해 후배를 양성할 수도 있고, 새로운 배움은 퇴근 후에 해도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일하면서 동시에 배움을 얻고 능력치를 향상할 수 있길 바란다. 회사는 언제든 망할 수 있지만, 나의 능력은 절대 사라지지 않기에. 회사라는 갑옷이 없어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니까.

 평소 나를 표현할 때 ‘인간 알쓸신잡’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관심사가 여러 분야에 걸쳐있어 이상한 잡지식에까지 흥미를 붙이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는데, 이것이 내가 배움을 갈구하는 것의 근원이라 생각한다. 또한 앞서 ‘자아실현’이란 내 능력치를 알고, 발휘해서 내가 생각한 이상에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능력치’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능력이 뭔지 알아야 하고 그것을 개발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배움은 필수다.


 평생을 배워도 죽을 때까지 다 못 배운다는 말이 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내가 배울 것이 있는가, 지금 일하고 있는 분야에서 내가 배움을 얻을 수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데로 눈을 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는 일할 거리가,

배울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 은퇴할 때까지 진득하게 일해야 하지 않겠냐고, 공무원을 하는 건 어떻겠냐고 조언해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며 가끔 고민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직업 유랑 인생에 자신 있다.

직업유랑인은
단순히 이직 철새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직업적 변화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성장하기 위한 배움의 기회를
다방면으로 꾸준히 얻는 사람이다.


직업이란 것은 시대에 맞추어 함께 변화한다.

새로운 직업 역시 계속 생겨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끝없이 유랑할 것이며,

이것이 내가 스스로를 직업유랑인이라 명명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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