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환승연애 보현에게 필요한 것
요즘 최고 인기를 달리고 있는 <환승 연애>를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참신한 기획과 트렌디한 연출의 요소도 있었지만 그게 바로 아주 최근의 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작년 말에 3년을 만났던 남친과 이별을 하고 정확히 4개월 후 다시 연락이 닿아서 다시 6개월 간 썸 아닌 썸을 타다가 다시 재회하게 되었다. (한집에 살지는 않았지만) 이별 후에 총 9번의 소개팅 및 미팅을 하고 코로나이긴 했지만 몇 번 놀 기회(?)도 있었다. 그 기간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기에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다", "똥차 가고 벤츠 온다" 등의 여성들 사이에서 정설로 여겨지던 문장을 스스로 극복하고 나만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법을 터득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와 전남친X의 이별은 보현, 호민 커플과 흡사했다. 내 생각에 보현과 호민의 가장 큰 이별 이유는 호민의 취직으로 인한 둘의 장거리 연애다. 둘은 세종대에서 만나 CC로 지내다가 호민이 작년에 송도로 취직하면서 롱디(Long distance love)를 시작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난 원래 성수 쪽에 살고 있었고 강남역 쪽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전남친(이하 X라고 칭한다)이 송도로 취업을 하게 되면서 본격 롱디가 시작되었고, 학생에서 직장인 연애로의 변화를 감당하지 못했다. 어쩌면 보현, 호민의 상황과 거리적으로는 흡사해서 둘의 지지고 볶는 장면이 깊게 공감되어 많은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그렇다고 전남친이 호민 같은 스타일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롱디 해도 남자가 진짜 좋아하면 다 만나러 와~"라는 친구들의 말은 롱디를 안 해봐서 나오는 말이다. 직장인에게 롱디는 정말 고되고, 힘든 일이다.
당시 남친과 나는 차가 없었고 데이트를 위해서는 대중교통과 환승을 여러 번 이용해야 했다.
1. 성수> 송도 갈 때 : 편도 1시간 45분 소요
성수에서 강남역으로 2호선 타고 가서 M6405로 대표되는 빨간 버스를 타고 성지 아파트에서 하차+또 버스 타고 남친 동네로 가야 한다. 이동거리가 길어서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고 늦잠 자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 송도 도착하면 이미 지쳐있어서 보상 심리가 높아짐.
2. 송도> 서울 올 때 : 편도 최소 1시간 40분 이상
빨간 버스를 타고 강남역이나 남태령역으로 오거나, 인천행 지하털을 타고 1호선으로 환승 후 서울 약속 장소로 이동한다. 만약 남친이 송도에서 나왔을 때 약속 장소가 버스가 한방에 오는 남태령, 과천 쪽이면 양쪽의 이동거리는 줄어드나 핫플인 이태원, 성수, 강남 쪽으로 오는 순간 남자 친구의 이동거리도 매우 길어서 이때부터 보상 심리 엄청 높아짐.
아무튼 둘 다 뚜벅이 일 때는 이동에만 왕복 3-4시간이 걸렸고, 주말에도 긴 이동 시간 때문에 피곤했다. 이동 시간이 긴 쪽은 보상 심리가 엄청나게 커진 상태여서 "오늘 너가 맛있는 것 사줘" 등의 보상 마인드(?)가 생기기도 했다. 이동시간이 길다 보니 액티비티 등 활동적인 연애보다는 만남에 의의를 둔 조금 평이한 데이트를 주로 하기 시작하면서 데이트도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이 부분에서 아마 "예전에는 데이트에도 적극적이었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소극적이고 신경안써?" 등의 마찰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보현도 이 부분을 애정이 변했다고 생각했고, 이별의 이유로 삼았던 것 같다)
결정적으로 내가 연애 3년 차에 파주 쪽으로 이직을 하면서 평일의 출퇴근 거리가 왕복 3시간이 되면서 주말에 더 이상 송도에 가는 것이 힘들어지게 되었다.. 둘 다 직장에서의 연차가 늘어나면서 롱디는 더 힘들어지게 되었고, 만남으로 싸우는 횟수도 더 잦아졌다.
이런 이유로 나는 (지금은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지만) 전남친 선호민의 입장이 정말 깊게 공감되었고, 동시에 보현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내가 알기로 보현은 데일리 하게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그래서 피곤에 찌든(?) K직장인 호민의 변화를 더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때 내 나이가 28살 정도였고, 내가 사회 초년생으로 룰루랄라 회사를 다닐 때는 남친이 주말에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고+ 회사 상사들에게 시달리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의 연애와 직장인이 된 이후의 연애 양상은 많이 다르다.그래서 한 쪽이 먼저 취업하고 한 쪽이 학생 신분일 때, 서로 이해의 범위가 달라져 많이들 헤어지는 것 같다.
아무튼 호민 편을 들고 싶지 않지만, 마음 깊이 이해하는 입장으로 둘의 재회에 필요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보현의 성찰이라고 생각한다. 보현은 아직도 좋아하면 상대방이 자신에게 100퍼센트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연애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환승 연애 3-4화에서는 보현이 이별에 대해서 미안해하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모습도 다수 비춰졌던 것 같은데 후반부로 갈수록 계속 호민의 잘못으로만 비춰지는 것이 안타깝다. (물론 호민도 재회를 위해서는 다시 이별을 말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필요하겠지....)
조금의 궁예질을 해보자면 민재나 정권 같이 처음에 엄청 잘해주고 다 맞춰주는 연애는 2년이 한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민재도 나중에 타코 집 운영이 바빠지고 생계로 인해 지금보다 연애에 대한 집중도가 낮아지게 된다면, 보현은 이전과 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지속적인 사랑에 필요한 전제는 연애가 지금 내 삶의 전부가 아니라, 지금 내 삶과 공존할 수 있는 공기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쪽의 심각한 무리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똥차 가고 벤츠 온다"는 문장을 말하기 전에 자신이 벤츠를 살 여력이 되는 사람인지 먼저 점검해봐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이별을 이유를 무조건 남 탓으로 돌리기 전에 (물론 외도나 폭력 등 상대방에게 완전한 결격사유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 본인에게는 정말 문제가 없었는지, 상대방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깊게 성찰했을 때, 정말로 다시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