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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의꿈 Oct 23. 2021

데이트 비용이 6:4이면 정말 만족스러울까?

자본주의에서의 데이트 비용

"두 분은 데이트 비용은 어떻게 내고 계시나요?"


그날 내가 준비했던 주제와는 다르게 원장은 전혀 예상외의 질문을 던졌다. 아마 지금 생각해보면 원장님은 그날 커플 상담의 주제를 '경제권'으로 정한 것 같았다. 사실 싸우는 많은 이유 중에 경제적인 문제가 완전히 배제되기는 힘들었고, 어쩌면 가장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었다.


카카오페이로 더치페이하는 문화가 익숙한 세대다


"비용은 6:4 정도로 내고 있어요! 거의 비슷하게 내는데 남자 친구가 아무래도 좀 더 내는 비용이 많은 것 같아요. 저도 4를 내고 있는데요 꼭 제가 안 낸다는 식으로 말한다거나, 본인이 얼마를 썼는지 열거하면서 제가 낸 부분을 기억하지 못할 때 다투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더치페이'가 보편화되던 시대에 데이트를 시작했고, 궁극적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함께 짊어지는 것이 동등한 관계의 근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5:5로 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게 사과 가르듯이 반쪽으로 갈라지진 않으니까.



그러나 기분이 나쁜 것은 꼭 내가 안 내는 것처럼 표현을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사려고 했는데 "이거는 너가 사는 거니?"라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한다거나, "너 만나면서 그때 한 달에 200만 원 썼어..." 라면서 내가 쓴 것은 잘 기억 못 하고 본인이 쓴 것만 명확하게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이 기분이 나쁘다고 원장님께 말씀드린 것이다.


"그럼 뭐가 불만이신데요? 남자 친구가 돈을 좀 더 내서 생색을 내는 게 싫은 신 건가요?"


원장님의 답변과 질문은 놀라웠다. 아니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신 건가? 문제는 나도 비슷하게, 똑같이 내고 있는데 내가 낸 것에 대해서는 별로 인지를 못하고 '왜 안내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는 내가 나이도 네 살이나 어리고, 그래서 연차가 상대적으로 낮으니까 연봉도 조금 더 적으니까 내가 내는 비용의 비율이 남자 친구보다 높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지불하는 비용이 월급의 10%라고 가정한다면, 남자 친구의 연봉이나 연차에 비했을 때 그는 5% 정도를 내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4를 내는 것이 5를 내는 것과 거의 같은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연에서 실시한 데이트 비용 비율

"제가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요, 미국의 유명한 학자가 연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상대방이 6을 내고 본인이 4를 냈을 때 가장 만족도가 높았다고 해요. 4를 낸 분은 만족도가 낮았고요. 그러니까 여자분은 지금 만족도가 가장 높아야 할 것 아닌가요?"


....? 아닌데요...


난 처음으로 상담에서 불쾌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 6:4 설문조사의 근거도 불명확하고, 솔직히 나는 내가 4를 냈을 때 정말 만족도가 높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저는 제가 7을 내고 그냥 잔소리 안 듣는 게 더 마음이 편하고 만족도가 높을 것 같은데요"


당시 사회 통념에 반하는 내용으로 인기를 얻은 김숙


왠지 모르게 연인 관계에서 돈 이야기가 나오면 예민해지고,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연애 이야기에서 돈 이야기는 금기시되는 것 같고, 아직까지는 "여유 있는 사람이 더 내야지"라는 분위기인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도 챙기고 자존심도 챙기는 건 욕심이에요"


원장님은 내가 4를 내고 있으니까 그에 맞게 행동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말에 대해서 솔직하게 객관적인 평가를 알고 싶다. 정말 그럴까. 돈을 덜 내는 사람은 항상 생색내는 것을 들어야 하고, 조금 더 져줘야 하고 자존심도 못 챙기는 것일까. 그러면 맞벌이 부부였다가 한쪽이 돈을 벌지 않은 상황이 된다면? 노동에도 경도 있는 것일까. 그리고 관계에서도 돈으로 서열이 구분되는 것일까.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200486625670520&mediaCodeNo=257 


이러한 고민을 나 혼자 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아서 결혼정보업체 듀오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를 인용한 기사를 가져와보았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지난해 2030 세대 미혼남녀 4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데이트 비용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데이트 비용으로 연인과 다툰 적이 있다’는 사람이 전체의 83.2%를 차지했다. 그들은 연인과 다툰 이유로 ‘내가 데이트 비용을 더 내는 것을 당연시 여겨서’(35.8%) ‘데이트 비용을 아끼려고만 해서’(25.8%),’ 수입이 같지 않은데 비용을 정확히 절반씩 부담하려 해서’(18.2%)를 주로 꼽았다.-이데일리-


연애 초반에는 계산대 앞에서 서로 카드 뺏기에 바쁘다



사실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세대에서는 구 시대적 사고방식으로 굳어진 것이 맞으나 그렇다고 5:5로 칼더치하는 문화가 완전히 정착된 것은 아니다. 데이트 통장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조금 더 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각자의 수입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금액 차이가 나는 상황이다. 그래서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서 갈등이 생길 수가 있다. 남자 친구는 말했다.


"제가 수입이 조금 더 많으니까 더 낼 수는 있는데요, 그게 당연한 건 아니잖아요. 각자의 상황은 각자가 결정한 거니까요. 그리고 제가 기분 나쁜 건 제가 더 내고 있는데 똑같이 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여자 친구의 당당한 태도입니다. 고마워하지 않는다고 느껴요"


"제가 한 것들은 기억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 이번 식사는 사려고 했는데 계산하기 전에 '이거는 너가 사주는 거니? 잘 먹을게~'라고 말하는 게 화가 나는 거예요. 제가 내려고 했는데도 갑자기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요. 평소에 제가 안 낸다는 듯이 말하는 것 같잖아요."


"그건 남자 친구분이 잘못했네요. 그런 말을 들으면 누구든지 기분 나쁠 거예요. 남자 친구 분은 말을 주의하셔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발언권은 경제력에서 나오는 것이 맞아요."


원장님이 말했다.


"원장님 그런데요 저도 남자 친구랑 똑같이 공부하고 똑같이 노력했는데요, 제가 문과고 남자 친구가 이과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평균 임금 자체가 남자보다 조금 더 저평가되어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사실 이 이야기를 여기서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무의식에 깔려있던 생각이 나오게 되었다. 노력의 경중으로 따지자면 나도 노력을 하지 않은 게 아닌데, 내 능력이 무시받는 것 같은 상황에 조금 기분이 나빴다.


"물론 그 입장에 동의를 합니다. 하지만 이전보다는 여성의 지위가 많이 올라온 이유는 여성들이 경제적 활동을 시작하고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이에요. 아직은 과도기 상황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갈등들이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서로 표현하는 방식을 변화하고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돈을 얼마 버는가 보다는 그냥 존재로도 고마운 관계가 사랑 아닐까?'라는 논리는 너무나도 이상적이다. 아등바등 서로 월급을 모아서 살아가는 두 사람에게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는 유부녀 친구의 이야기를 곱씹는다. 단순히 짧게 연애만 하는 것이 아니고, 길고 진중하게 서로를 소중한 관계로 생각하고 있다면 경제관에 대한 가치를 공유하고, 타협점을 찾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 그리고 내가 돈을 쓰는 방식과 라이프스타일 모두 타인과 교류하는 방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3회 차 상담은 가장 냉정하고,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돈에서 자유로운 사랑이 과연 가능할까. 결국 인생은 시소처럼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기브 앤 테이크'가 결국은 인간관계의 본래 법칙이라는 한 심리학자의 문장은 사랑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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