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서를 붙이면 사과가 아니다
최근 정치인들이 유명 연예인들이 ‘사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사과를 하고 욕먹는 경우가 더 많다. 바로 이 영역이 그 무엇보다 진정성이 요구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래의 영상은 개인적으로 멋진 토론이라고 생각되는 영상인데, 바로 재일교포 신숙옥 씨가 일본의 ‘사과’ 문제에 대해 조리 있게 반박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냐고 묻는 일본에게 진정성 없는 사과의 맹점을 말한 영상이다. 이 영상의 링크는 맨 마지막에 걸어 놓도록 하겠다.
100만 원짜리 커플 상담을 하면서 가장 유익했던 부분도 바로 ‘사과’에 대한 소통 방식을 배운 것이었다. 사실 서로의 의견 차이가 가장 극명했던 부분이 바로 ’ 사과’와 관련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에피소드 1) 서로 바빠서 열흘 만에 만나는 날. 만나기로 한지 3시간 전에 갑자기 자신의 직장동료가 쓰러져서 남자 친구가 갑자기 약속을 취소했다. (당시 회사여서 전화를 하지 못하고 카톡으로 말했다)
남: 갑자기 김 사원이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갔어. 내가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서 오늘 못 만날 것 같아. 미안.
여: 어떡해 깜짝 놀랐겠다. 오빠가 응급실에 같이 가야 하는 상황이야?
남: 아니 119 구조대원들이 데려갔어. 나는 퇴근하고 가보려고.
여: 근데 지금 코로나 때문에 친족 밖에 면회가 안 되는 상황이라 너는 못 가는 상황일 텐데.
남: 그래도 내가 마음이 불편해서 가봐야 할 것 같아.
여: 아니 오빠는 친족이 아니라서 면회가 안 되는 상황이야.. 면회가 되는지 먼저 응급 구조대원이나 병원에 물어봐.
남: 일단 지금 업무 중이라서 나중에.
여: 아니 지금 확인을 해줘!
남: 아니 이런 상황도 이해를 못해줘?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결국 남자 친구가 약속을 취소해서 미안해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도 기분이 상해서 싸우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약속을 취소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그 이유가 명확하기를 바랐다. 그날은 열흘 만에 겨우 약속을 잡아서 만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명확한 이유 없이 약속을 쉽게 취소하는 행위에서 내 약속을 쉽게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본인은 사과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저한테 미안하다는 말은 엄청 짧게 하고, 그다음에 계속 근데 이런 것도 이해 못해주냐 너무하다, 이런 말들만 반복하니까 전혀 사과처럼 느껴지지가 않는 거예요!"
"아니 약속 취소돼서 미안하다고 말했잖아! 내가 사과를 안 했어 뭘 안 했어! 난 정말 잘못한 게 없다고!"
상남친은 포효했다. 원장님은 구체적인 표현 방식을 제시해주었다.
"남자 친구분이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정말 미안해. 내가 동료가 쓰러졌을 때 너무 당황해서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약속을 보류하면 어떨까 해. 내가 가봐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것에 대해서는 정말 정말 미안해. 내가 이번 주 중에 꼭 보러 갈게! 이렇게 어떤 사건이 있을 때는 충분히 감정 표현과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아요.
그리고 다른 이야기는 나중에 해야 합니다. 왜 이해를 못해주느냐, 내 일정을 구속하려고 한다는 문제 등은 말하지 마셨어야 합니다. 그때 타이밍에는 딱 사과만 해야 하는 거지, 굳이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또다시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진정성 없는 사과는 오히려 분노감을 유발할 뿐이죠. 단서를 붙이면 사과 효과가 떨어집니다. 사과는 사과스럽게! 온전히 사과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진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맞아 맞아 맞아 맞아 맞아!! 제 말이 바로 그거예요 원장님!"
내 감정을 명확한 언어로 전달해주는 선생님의 통찰력에 마스크 뒤로 속사포로 공감을 표현했다. 그리고 마치 일본이 “사과했는데 언제까지 사과해야 되는데?”라고 말하는 논리랑 비슷하다고 느꼈다.
(에피소드 2)
"그리고 남친은 잘못했을 때 먼저 사과하지 않아요"
"여자 친구 분은 그가 어떻게 사과해주기를 바라는 건가요?"
"저는 그가 잘못했으니까 제가 있는 쪽으로 와서 잘못했다고 말하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살갑고 다정하게 대해주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는 어떻게 했나요?"
"그냥 저희 동네로 오기만 했어요. 먼길 왔으니 저한테 밥을 사달라고 하지는 않나, 미안하다는 말은 이미 했다고 하지도 않고, 그냥 평소랑 똑같이 대했어요. 미안해하는 사람의 태도처럼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분은 본인이 먼 길을 왔다는 것 자체로 사과를 했다고 생각하셨네요. 여자분은 원래 1만 할 줄 아는 사람에게, 2,3,4도 바랐던 거네요. 그건 마치 거의 운전도 하나도 못하는 초보운전자가 처음부터 강남으로 운전하러 가는 것이랑 똑같아요.
현명한 갈등 해결법은 1단계의 사람을 2단계로 바꾸고, 2단계의 사람을 3단계로 점진적으로 바꾸는 거예요. 순차적으로 은밀하고 위대하게, 사과의 방법을 적용해보는 것이지요"
그날의 상담은 그 관계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상대방에게 고칠 수 있는 것과 고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했다. 나는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만 말하고 그것을 지혜롭게 풀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결국 다시 나의 문제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인가?
항상 언제나 귀책사유가 남자 친구에게 있다고 생각한 나는 개인 상담에서도 내 편만 들어줄 줄 알았던 원장님이 우리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돌아봐주는 모습을 통해 많은 생각을 했다.
관계 또한 운전 연습 같은 것. 어떻게 하면 운전을 잘할 수 있듯이 고민하듯이 관계에서도 지혜롭게 행동하는 방법에 대해 항상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그가 나에게 제대로 사과하는 법을 몰랐듯이, 나 또한 1단계에 있던 그가 4단계의 사과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도 있었다. 그래서 상담을 하다보면 특정 상황에서 한 명에게만 잘못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관계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다.
위에서 언급한 신숙옥 토론 영상 링크
https://youtu.be/v1UosEdsni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