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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의꿈 Oct 24. 2021

남녀 갈등은 남녀 때문이 아니라고!!

난 빻았지만, 널 사랑해!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젠더 갈등은 남녀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2021년 지금,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연인 관계에서도 이 문제는 여전히 민감한 사안이고, 현재 진행 중이다.


출처 무등일보


2020년 3월, 많은 커플들을 싸우게 만든 사건이 있다. 바로 텔레그램에서 아동 성착취와 성범죄를 했던 N번방 사건이다. 나와 상남친도 정말 첨예하게 싸웠던 기억이 있다. 내가 그 N번방 사건의 주범과 함께 잘못된 성 문화를 비판하는 카톡을 보냈을 때 “세상에 이상한 놈 많아. 너도 조심해”라고 말했던 것이 화근이 된 것이었다.


[에피소드 3]

여 : 이것 봐봐. 진짜 미친놈들이지 않아? 진짜 이런 영상들 소비하고 유포하는 문화 정말 심각한 문제야.

남 : 세상에 이상한 놈 많아. 너도 조심해

여 : 아니 이상한 놈이랑 이걸 소비하는 행태를 욕해야지 왜 내가 조심해야 해?

남 : 왜 화를 내? 남자 친구로서 너한테 그런 말도 못 하니?


이런 식의 대화로 이어지면서 나는 N번방 사건을 통해 남자들을 싸잡아서 욕하는 ‘페미’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사실 그 단어 자체를 나에게 지칭하는 것 자체가 ‘일방적으로 남자 욕하는 편협한 여성'이라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물론 페미니스트는 원래 그 의미가 아니지만 말이다.


요즘 넷플릭스의 <D.P>로 인해 군대 내부 문제가 중요한 화두에 올랐지만, 그 이전에는 군대 문제가 나오면 항상 “여자들은 왜 군대 안 가냐”라는 논의와 함께 젠더 갈등이 붉어졌다. 그리고 이 갈등은 아직도 열렬하게 진행 중이다. 여혐이나 남혐, 불편한 언어들을 서로 자제하는 것은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2030세대에게 젠더 문제는 핵심 갈등이다


커플 사이에서의 데이트 비용 문제부터 시작해서 가사 분담과 역할 분담, 그리고 이후의 결혼 문제까지 모두 각자의 사회적 역할을 어느 정도 부여받고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녀가 관계를 맺으면서 이 논의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들다.


군대 문제는 여자가 군대 간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중요한 갈등의 근본 원인은이 우리의 오랜 역사와 문화에서 기인한다. 1950년 한국 전쟁 이후로 전 세계 유일무이로 휴전 체제를 유지하며 징병제를 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부조리한 문화와 갈등도 그로부터 기인했다. 결국 이 문제는 군대에 가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휴전이 끝나야 해결이 되는 문제다.


충격적이게도 이 사실을 깨달은 지 5-6년이 채 되지 않았다. 학기의 마지막 수업을 들었던 2015년 정도에  ‘김치년’이라던가 ‘한남’, ‘메갈리아’ 등의 갈등이 한창일 때 이 주제들이 전공 수업에서 화두에 올라 토론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 친구에게 이런 내 생각을 피력할 때마다 '페미니스트' 소리를 들으면서 논의가 종료되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이걸 상담에서 원장님이 순화된 언어로 말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출처 소년중앙


"두 분이 모두 한국 문화권 안에서 지내셨기 때문에 이런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랍니다.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살았던 남성분들의 사고에는 아직 과도한 남성성과 책임감이 자리하고 있고, 여성분들도 선진화된 사고를 한국 문화권에서 실천하기에는 어떤 한계를 느끼시는 거죠. 우리 사회가 아직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기 힘든 과도기에 있는 것입니다"


젠더 갈등을 다뤄 화제가 됐던 EBS <까칠남녀>


남자 친구가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는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일방적으로 남자 탓을 하는 것이 페미니스트의 근본 사고방식이 아니다. “이건 남자 탓이야”, “이건 여자 탓이야”라고 불특정 반대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비난을 하는 것은 전혀 문제 해결에 준비가 되지 않는다. 이 문제가 우리가 살아온 문화와 역사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근본적인 근원을 따라갈 때 이 뿌리 깊은 갈등이 해결될 것이다.



“난 빻았지만, 널 사랑해!’


남자 친구가 가끔 말하는 문장이다. 내가 4년 간 여러 번, 그리고 자주 그가 가진 생각들은 시대착오적이고,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살아가는 이 현실에 부적합하다고 말하자 그도 이제 그의 생각이 절대적이지 않았구나 깨닫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이해를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페미니스트는 미친 X이 아니라 그저 ‘기울어졌던 운동장’을 수평으로 만드는 노력을 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남자 혼자 모든 무거운 책임을 지거나, 여자 혼자 모든 무거운 책임을 지거나 하지 않는 것이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고, 계속해서 이야기 중이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그가 가진 생각 중 일부가 ‘잘 몰랐다’라고 아주 약간 인정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온 것이다. (물론 그의 생각에 ‘빻았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개인적으로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다.)


한국 성평등 지수는 여전히 최하위(108위) 이다


그래도 나는 내 연인과 주변 남성 친구들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인정하는 수준까지 온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그저 옳고 반대편을 악인으로 만드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소위 ‘꼰대’라고 인정하거나, 사고가 ‘편협했구나’라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변화다. 이 혼란한 세상 속에서 유연하게 사고하며 자기의 중심을 지킬 수 있는 정도, 그 정도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아주 대단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남녀 갈등의 근본 원인은 그 개인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이곳의 문화와 역사에 있다.  


그리고 그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도 바로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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