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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진 Sep 22. 2022

감정을 처리하는 속도


뭐하냐는 말이 그리워.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뭐하냐고 물어봤었잖아. 지금은 나의 하루, 나의 시간, 나의 순간들을 궁금해해 주는 사람이 딱히 없거든.


반대로 내가 당신에게 뭐하냐고 물어보면 당신은 항상 모든 걸 다 내려놓은 사람 마냥 “내가 뭘 하겠어. 그냥 있어.”라고 대답했지. 그렇게 말하는 당신이 그리워. 

지금도,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


그때의 나는 당신이 뭐라도 하길 바랬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난데, 그 공허한 마음을 알면서도 다그치게 됐어.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이야. 언제나 ‘뭐해?’라는 질문을 하자마자 대답이 반격해오기까지의 그 찰나의 순간엔 오늘은 조금 다른 대답이길 바랐어.


요즘 내가 이렇게도 힘이 없는 건 내가 나의 온몸으로 당신을 그리워하기 때문일까. 나는 당신을 절대 그리워하지 않겠다고,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말이야. 언젠가 만약 당신에게 연락이 온다면, 그럴리는 없지만 만약 문자가 온다면 욕 한 바가지 해주겠다고 다짐했어. 그랬던 나는 지금 당신으로 가득 찬 문장들을 한 바가지 토해내고 있네. 진짜, 당신으로 가득한 글자들이야.


공허하고 심심한 하루 하루야. 이상한 기분으로 매일을 시작해. 벌써 반년을 혼자 보냈는데 나는 왜 이제야, 이렇게 충분한 시간이 지난 이제야 실감을 할까. 사람들마다 감정을 처리하는 속도가 다르다던데, 나는 6개월이나 뒤쳐진 걸까?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세세하게 조각조각 토막 내서 소화시키는데 반년이 걸린다는 거네. 음식도 그렇게 천천히 소화시키면 좋겠다. 그럼 살이 덜 찔 텐데.


있잖아, 나는 분명 홀로 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기우뚱거려. 내가 당신에게 너무 많이 기대서 그런가. 당신을 너무 세게 안아서 그런가. 당신은 왜 지금 내 울타리 안에 없는 거지?


그래, 우리는 원래 남이었잖아. 함께 한 시간보다 남이었던 시간이 더 기니까 지금처럼 각자의 삶을 사는 게 더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몰라. 우리 각자의 울타리에 전혀 겹치는 양들이 없다는 사실이 좋았는데 이제 보니 한 마리쯤은 두 목장 사이를 왔다 갔다 했어도 좋았을 것 같아. 당신의 소식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몇 년 전부터 바랬던 거지만 지금이라도 당신의 눈이 반짝이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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