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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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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북한산에 올랐다. 
오른 지 삼십 분이나 되었을까

일행에게서 멀어진 나를 좀 더 채근할 수 있었겠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게 산이려니와 먼저 가라고 청한 뒤 산길을 걸었다. 
힘들면 쉬고 다시 걷는 게 인간의 본능 아니던가
정말 충실하게 그 여유를 바램으로 족두리봉을 지나 향로봉에서 다시 일행들을 만났다. 
얼음 잔에 가득 부은 곡차가 짜릿하게 목구멍을 따라 흐르니 어찌 걸음 뗄 수 있으랴 그저 쉬엄쉬엄 걸으며 비봉에 도착했다.


진흥왕순수비에 오르기 위해 모든 짐을 풀어던지고 휴대폰만 챙겼다. 
산에 오르면 뭐하나, 세상의 창구를 잠시도 닫을 수 없으니

누구에게 보일라 사진을 찍고 메시지를 보내다 보니 불 꺼진 핸드폰이 반겨질 만했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불 켜진 뇌리에 환히 수를 놓았다.


그리고는 마음 편히 눈을 감고 허공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내 바람이 나를 안아 휘파람을 불렀다
몇 평 안 되는 비석 옆에 내 몸 하나 뉘고 마침내 비봉에 마음 편히 누울 수 있었다.

내 복이 그저 바람이라면 완주보다 곱절 높은 봉우리를 쳐다보아도 그만이지

우리 각기 다른 생각을 안고 만나서 서로 인사하고

내 마음 그대 마음까지 바람 타고 작은 봉우리에 닿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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