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 발, 목포행 1401호 무궁화 열차
언젠가부터 이런 마음이 있었다.
하루 이틀쯤 핸드폰을 잠시 꺼두고
지방의 작은 도시들을 여행하는 길지 않은 여정
그 시간들이 나에게 가져다줄 설렘과 기쁨의 시간들. 미뤄두었던 산과 들녘, 강과 바다를 계절과 함께 새기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월요일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찬 새벽공기만큼 진한 어둠이 있는 겨울아침
모두의 발길은 옹달샘이 채워진 계곡에서 흐르는 강물 넘어 삶의 바다로 채워지고 있을 것이다.
아침 7시 33분 용산역발 호남선 1401호 열차를 탔다.
목적지인 무안까지 나를 데려줄 이 디젤 기관차는
세월을 머금고서 피어낸 무궁화 같았다.
천안을 지나 조치원, 신탄진 오래전 익숙한 기억의 역들을 지나 열차는 호남을 향해간다.
차창에 머문 내 시선과 흘러가는 풍경의 시속이
오래된 카세트테이프처럼 맞물려 돌아갔다.
논산역에 도착하니 이십 년 전 그때가 떠오른다
이제 막 훈련소를 수료하고 부대를 배속받아
열차를 탔던 이등병의 시절.
그 열차 안 붐비는 객실에 서서 나는 알지 못하는 그 어떤 이에게 전화기를 빌려 엄마에게 전화했던 것 같다.
멋쩍은 통화와 울먹거리는 마음과 긴장한 나 자신을 어쩔 줄 몰라 토해내고 싶었던 그때.
깨끗이 지웠다고 생각한 과거의 기억은 이제 어렴풋한 선율이 되어 더욱 아련하다.
이제 익산을 지나 김제를 향해 달린다.
산이 높지 않아 해와 가까운 이 땅엔 그 빛이 유난히 따스하다.
얼지 않은 이 호남의 평야는 다시 봄을 준비할 터이다.
왜 나는 이 여정의 시간을 왜 주저했을까
바람이고 싶다고 노래했고
남쪽바다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었는데
변명은 이유로 남아, 떠나지 못함은 온통 내 시절을 지배하고 말았다.
약 5시간의 운행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열차는 장성을 지나 시대의 심장인 광주로 들어서고 있다.
80년대 초반 광주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었다.
아주 어렸을 적 엄마가 버스를 운전하는 꿈을 꾼적이 있는데 얼마 전 엄마의 면허가 대형면허인 것을 처음 알았다.
작년 가을엔 예전 전남도청 건물 옆에서 공연한 적이 있었다. 옛 추억은 뒤로하고 그날 공연이 맘에 걸려
서울로 돌아오기 바빴다.
무안에 도착하면 무엇을 할지는 정하지 않았다.
어젯밤 검색으로 오래된 식당들을 찾아보다 그냥 덮어두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짙은 무진을 상상해 보았는데
무안은 내게 햇살 가득한 겨울의 오후를 선사할 것 같다.
무안 에서의 첫 시작은 아마도 읍내까지 걷는 한 시간 정도의 걷기로 정해놨다.
이십여분 남짓 이면 이제 도착이다.
마음의 기적소리를 내기 위해 글을 접어둔다.
지금 내 눈에는 높지 않은 봉우리와 초록의 들녘들이
이미 들어와 있거든.
이천 이십 사 년 일월 이십 구일, 아침 일곱 시 삼십 삼분에서 오후 열두 시 삼십삼 분까지 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