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의 기록

우리 엄마는 고기를 못 드신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시다.
하지만 육고기 냄새를 싫어하신다.
다행인 건 엄마가 단백질 섭취를 위해 일정량의 생선은 드신다는 일이다.
엄마는 요가 선생님 이셨다.
한평생 5시 이후엔 음식을 잘 드시지 않으셨다.
아마도 요가 동작을 선보여야 하는 직업이기에 몸이 무거워지는걸 많이 경계하셨을 거다.
엄마와 단둘이 외식을 할 때면
항상 우리가 찾는 메뉴는 막국수였다.
그 흔한 보쌈 하나 시키지 않고도 우린 막국수 두 그릇이면 그만이었다.
애주가와 미식가를 자처하는 나이기에
술을 먹은 다음날은 해장이 필요했고
난 달지 않고 순한 동치미 육수 가득한 물막국수를, 엄마는 심심한 비빔장과 툭툭 끊기는 식감의 메밀면을 함께 찾아 떠나곤 했다.
오늘도 역시 우린 새로운 막국수 한 그릇을 마주했다.
자꾸만 먹는 양이 줄어드는 엄마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막국수 한 그릇채 다 비워내지 못할 때가 허다하니 말이다.
계산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 오늘 막국수는 어땠어?라고 묻는다.
역시나 냉정한 평가가 들려온다.
‘응 영 형편없었어, 물막국수 육수는 다시다 범벅에, 비빔장에는 참기름 범벅이더라’
그 답변 내 마음과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메밀 고유의 식감과 구수한 향을 흩트려놓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린 집이 있는 반면, 쫄깃한 면발과 새콤달콤한 맛을 추구하는 집이 양존하니 우리 모자의 입맛에는 전자의 맛집들이 맞나 보다 생각한다.
아까 전의 식당에서 우리 테이블 옆에 혼자 식사하시던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한분이 떠올랐다.
얼마 전부터 엄마가 하는 말이다.
나도 십 년이 지나면 저럴 텐데 저리 늙어갈 텐데 큰일이다.
사람들이 가끔 나에게 묻는다.
어찌 그리 엄마와 사이가 좋냐고
엄마에게 참 잘하는 것 같아 보기 좋다고 말이다.
나도 엄마와 참 많이 싸웠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엄마가 작아졌다.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철이 없는 사람이기에
아직 중년의 여인이라 가둬두었다.
엄마는 이제 내게 시간이 되었다.
오늘의 그 맘에 들지 않았던 막국수 한 그릇도 내겐 소중했다.
이 글을 쓰다 마치면 ‘엄마’ 하고 부를 것이다.
다시 또 엄마와의 기록을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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