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예찬 無名禮讚

흔히들 무명에 대하여 불교적인 해석의 관점보다,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해석으로서의 무명(無名)에 대하여 많이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이라는 화두 아래 나는 이 모든 무명의 사람들의 예찬론자가 되어 이 글을 풀어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금의 이 시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흐름과 교류의 유속은 빨라졌다.
사람들은 많은 정보를 공유하여 살아가고 있지만, 그 해일과도 같은 정보의 파도 속, 세상의 작품들을 소화해 내고 있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그 깊은 사념의 바다에 살고 있는 우리가, 유명(有名) 하지 못한 어떤 이의 삶을 무명(無名)이라 칭하는 것에 가혹하다는 느낌을 받은 지 오래다.
어떤 분야도 같겠지만 특히 창작과 예술의 터에 기반을 두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 유명과 무명의 잣대가 여전히 애처롭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민감한 판단이 지니고 있음에 분명한 선택이, 탈락의 고배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창작과 예술의 터에 어떤 대표작으로 명시되는 부분들을 나는 크게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그것 또한 그들이 걸어가는 과정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과 본질의 미학은 어떤 이들에게도 무시받을 수 없다.
오히려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난 생각한다.


어떤 낯선 자리를 떠올려 본다.
서로의 명함만을 주고받듯 단편적이고 얇은 종이 한 장의 소개가 전부인 그 자리에서, 나와 혹은 너는 적잖이 두려워지기 일수였다.
타인에게 나를 소개하는 것과 대중들에게 내 작품을 선보이는 것, 둘 중 어느 것도 빠짐없이 중요하지만
유명과 무명 색안경의 시선으로 모든 창작과 예술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 편견 늪에서 먼저 꺼내어 주고 싶다.

그 모든 바탕과 본질, 과정과 결과는 행위에서 나올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대상은 그 모든 행위자일 것이다.
며칠 새 바뀌어지리라 생각지 않는다.
그저 내가 가늠한 작은 바람을 우리 모두 부둥켜안을 수 있을 때까지 묵묵히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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