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아 늦잠 자고 일어난 아들이
회사에 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 엄마, 배고픈데 라면 먹어도 되나?
- 어후 우리 주말에 집캠핑 한다고 라면 왕창 먹었잖아
라면 먹지말자.
- 그럼 뭐 먹지?
이모님이 계시지만 이모님이 몸이 안 좋아서 잠시 병원을 간 모양이다.
- 이모 오시면 그때 점심 먹지그래?
아직은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혼자 요리를 해보려고 하는 것에 살짝 겁이 났다.
그래서 만류해 보았다.
- 아냐 엄마 나 배고파 내가 혼자 해볼래.
한다면 해내는 녀석 성격을 잘 알고
지금까지 아예 혼자 요리를 해본 적은 없지만
평소에 요리 보조를 잘해주는 걸 감안하면
어쩐지 혼자도 잘 해낼 것 같았다.
그래서 차라리 안된다고만 하지 말고
자세히 말로 설명해줘야겠다 싶었다.
- 서누야 그럼 냉동실에 작은 냉동 새우 있어
새우볶음밥을 한번 해봐!
- 오 좋아. 어떻게 하지?
- 5 정도로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두르고 대파를 썰어서 볶으면서 파기름을 먼저 내어 둬. 새우는 따로 해동할 필요 없이 흐르는 물에 살살 씻어내면 금방 저절로 해동되니까 씻었다가 파기름에 볶아줘. 7 정도로 불을 높이고 새우가 어느 정도 익으면 재료를 한쪽으로 몰아주고, 계란을 풀어서 소금 한 꼬집 넣고 스크램블처럼 볶아줘. 계란도 적당히 익으면 밥솥에서 한 그릇 퍼서 넣고, 그 다음 간장 한 숟가락을 후라이팬 가장자리로 살짝 태우듯이 둘러줘. 밥이랑 볶은 재료들이
다 잘 섞이면 마지막에 참기름 통깨 휘리릭 알지?
말로만 사진도 없이 설명을 회사에서 전화로 대충 해주고 전화 통화 말미에
- 서누야! 근데 어떻게 먹었는지 궁금하니까 사진 하나 찍어서 보내줘! 하고 급히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으면 내 정신은 다시 회사로 온전히 돌아와서 일을 하다가, 회사 점심 시간이 되어 다른 팀 팀장님이랑 맛있는 만두전골을 먹다가, 웃긴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아까의 아들과의 통화는 까맣게 잊고 한시쯤 회사 자리에 돌아왔다.
회사 자리에 앉자 아차,
아들이 그래서 점심을 혼자 잘해 먹었을까?
생각이 났다.
연락을 해보려고 휴대폰을 뒤지니
안 읽은 문자가 하나 와있다.
왠 문자지?
습관처럼 메세지를 확인하니
세상에.
인스타에서나 볼 법한
감성 가득한 새우볶음밥에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마실 것이 곁들여진
사진이 와있다.
와.
이상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정말 혼자 잘 해냈구나 대견한 마음,
언제 이렇게 많이 잘 컸나,
새우볶음밥도 고슬고슬하게 잘 볶았지만
그 옆에 내가 평소에 손님이 오면 잘 쓰는
와인잔에 오미자청을 시원한 물에 타서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음료까지 세팅할 줄 아는
이 초등학생!
감성이 촉촉한 사람으로 커나갈 예감,
집에서 간단하게 자기 끼니정도 기쁘게 맛있게
차려먹을 수 있는 남편으로 커나갈 기대.
일상에서의 작은 행복들을
소중히 여기고 누릴 줄 아는 어른으로
잘 자라 줄 것 같은 고마움.
설레발을 잘 치는 나는
아들이 혼자 멋지게 해먹은 새우볶음밥 한 그릇에
시험 전교 1등을 한 것도 아니건만
기분 좋은 콧노래를 부르며
아들이 멋지게 잘 커나갈 것이라고
확언을 나 스스로에게 하였다.
- 새우볶음밥 맛있었어?
- 응! 진짜 맛있더라! 내일 또 해 먹어도 돼?
진짜 맛있었어!
싱글벙글 초등학생의 해맑은 얼굴이
고단했던 내 하루를 녹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