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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이지까까야

이지까까를 아시나요

by 배지


1학년 아들이랑 보드게임을 하다가 노력을 별로 기울이지 않아서 아들에게 졌다. 너무 봐주나 싶어서 그다음 판에는 정신 차리고 최선을 다했는데 또 졌다. 오기가 생겨서 야 한판 더하자! 했더니 아들이 내게 거만한 얼굴로 말한다,


“엄마는 이지까까야”


이지까까?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 생소한 말이라 바로 되물었는데, 이지-까까 라는 말을 내 입으로 내뱉는 순간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Easy : 쉬운

까까 : 과자


즉, 한마디로 너는 내 밥이다 이 말인 것을


1학년의 말로 표현되니 사실 기분이 나쁠법한 말인데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고 그저 신통하게 귀엽다.


불량한 중학생들끼리 하는 말이라면

“야 이 조밥아!!!”라고 했을 그런 말인데

“너는 이지까까야” 라고 하니

분명 똑같은 뜻인데 기분이 너무 다르다.


아~ 엄마가 이지까까라구?

아니거든? 한판 다시 붙어 제대로 보여준다

하고 깔깔깔 넘어간다.




엄마 유누는 ㅇㅇㅇ 랑 축구를

1대 1로 붙어보고 싶어.

1대 1로 드리블 붙어보면

ㅇㅇㅇ 완전이지까까일 거 같애


여기서도 귀여운 말의 힘은 발휘된다.

욕한 것도 아니고 본인의 열망을 표현하는데

뭐라고 할 말도 없고

나도 그냥

아~ 유누 생각에는 ㅇㅇㅇ가 이지까까일거 같구나~

정도로만 맞장구치고 넘어가게 된다.


1학년의 귀여운 자만과 욕망에 내가 섣불리

너 친구를 이지까까라고 보면 안 되지! 이럴 수도 없고

아니야 니가 이지까까일 수도 있어 이러기도 그렇고


아 유누 생각엔 이지까까구나~

하는 수밖에 없다. 말미에

그런가? 정도 추임새 하나 넣어준다.






그러고 보면 사실 우리는

생각의 본질이나 본 뜻에 담겨지는 의미보다

그 겉을 싸고 있는 껍데기 표현에

더 많이 좌지우지되는지도 모르겠다.


싸움이 있은 후에도

상대방의 정말 속마음이 어떤지는 알 길은 없지만

입으로 말로 미안하다고 표현해주면

상대방은 사실 그다음엔 더 할 말은 없다.

미안하다잖아.


눈물의 여왕 홍해인을 보면서도

느낀 바가 참 많다.

진심으로 사랑을 아무리 심장으로 해도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표현이 없고

틱틱대고 짜증 내고 불쾌한 표현만 있으면

사랑이 없는 것과 매한가지다.


어쩌면 본질은 마음이 아니라 표현의 말

일 수도 있겠다.






내가 너 완전 무시해 넌 나한테 안되지

심지어 이런 불쾌한 의도를 갖고 한 말이라도

너는 이지까까야!

귀여운 말로 해주면 어이는 없어도

희한하게 기분은 안 나쁘다.



그렇다면 사실 평화는 더욱 쉬워진다.

검은 속내와 구린 열망이야 어떻건

말만 좀 순화하고 좋은 말 예쁜 말 귀여운 말을 쓰면

이 세상 많은 다툼은 사라질 것 같다.


하루 하나씩

나쁜 말을 귀여운 말로 바꾸기 운동

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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