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무렵 또 습관처럼 한숨을 쉬며 읊조렸다.
‘아 내일 또 월요일 이잖아? 또 출근해야 되고 너도 학교 가야 되네!’
이 월요병을 두려워하는 일요일 저녁 무렵
직장인 엄마의 푸념은
근심이라기엔 가볍고, 기분이 좋다고 하기엔 무거운,
그런 매주 일요일 습관성 한숨 같은 그런 것이었다.
말하자면 정말 회사를 관두고 싶다거나 아니면
월요일이 너무 걱정된다거나 한 것은 아닌 것이다.
금요일 저녁이면 적당히 기쁘고,
일요일 저녁이면 적당히 기분이 가라앉는.
마치 때가 되면 생리를 그저 시작하는 여성의 주기처럼
일상적이고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부모의 말을 크게 듣는
1학년 어린이는 나의 푸념을 듣자마자
‘엄마 회사 안 가면 안 돼?’라고
나에게 큰 어퍼컷을 날려주었다.
‘아차차’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 손을 잡은 상태였으면
무심코라도 내가 할 말이 아니었음을
바로 알아차렸지만
이미 쏟아진 물처럼 말을 되담을 수는 없다.
급히 안색을 밝게 밝히며 아 엄마 회사 가야지!
방금 한 말 그냥 한 거야~ 윤우랑 이렇게 놀면서
손잡고 서점도 가고 하면 좋으니까!라고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지만
이미 나의 아들은 귀신같이 내 진심을
캐치해내버린 것 모양이다.
‘엄마 회사 안 가면 안 돼?
회사를 안 가서 엄마가 못하는 게 뭐야?‘
나에게 연속 두퍼컷을 날린다.
당황한 나는 아무 말 대잔치를 시작한다.
‘으응? 엄마가 회사를 가야 이렇게 윤우 장난감도 사주고 그러지!‘
‘근데 아빠도 돈 벌잖아.
어차피 아빠가 돈 버는데 엄마가 돈 더 벌어봤자 뭐 해.‘
‘아 그래도 엄마 아빠 늙으면 노후 대비도 해야 되고~
돈은 많이 벌 수록 좋은 거니까!‘
‘별로 필요도 없는 것 같은데.
엄마가 회사를 안 가서 못하는 게 뭐야?‘
‘어, 엄마가 회사를 계속 가면
엄마 회사 사장님을 할 수도 있잖아.
회사 안 가면 엄마 회사 사장님 못하지!‘
‘근데 그건 좀 사실 어려운 거 아니야?’
‘어… 아 그 어렵긴 한데… 그래도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어버버 밀리기 시작하니
초등학생 1학년의 질문 때문에
또 자아 성찰, 내 인생의 목표, 삶의 본질
이런 가치들을 돌아보게 된다.
정말 내가 회사를 안 가서 못하는 게 뭐지?
회사를 가면,
우리 아들들이 하교하고 학원 가기 전에
웃는 얼굴로 맞아주고 간식 챙겨주는 것을
할 수가 없다.
멋진 폼으로 친구들과 축구하고
한골 넣었을 때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소소하게 같이 아이스크림 사 먹는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회사를 안 가면
매일매일 아이들과
소소하고 소중한 행복들을
누릴 수도 있는데
나같이 늘 새로운 걸 추구하고 싶어 하는 성향은
그 일상의 소중함을 이내 까먹어버리고
회사에 있을 땐 보석처럼 느껴졌던
그 작은 틈틈의 아이와의 시간들을
일상적으로 쓰는 수건처럼
특별할 것 없이
마구 쓰고 소중함을 잘 모르고
지나가버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러다가 또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서
집에 있는 시간에 뭐라고 아르바이트를 구하겠다고
번역이라도 하겠다며 뛰쳐나갈걸 안다.
결국 나는
회사를 가지 않는다면
아이와 평일에 할 수 있는 소소한 행복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늘 아쉬워하고
가치롭게 생각하는 걸 못해서
나는 회사를 가고 있다는 결론까지
이르렀다.
언제라도 게으르고 싶은 나는
회사 출퇴근이 없다면
오늘처럼 화창한 날의 하늘을 한번
보지도 못한 채 집에서 한나절을
잠으로 채워버릴 수도 있다.
회사를 안 가면 나는
부지런하게 일상을 채우지 못해서
회사를 이토록 열심히 다니고 있나 보다.
일 년 내내 열심히 회사 다니다가
꿀 같이 달콤한 휴가를
일 년에 몇 번
가고 싶어서.
아들아. 미안하다.
그치만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