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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 Jul 18. 2024

무제1

내가 사시라니


언제부터였을까. 술을 어느 정도 먹으면 시야가 조금씩 흐려졌다. 정확히 말하면 앞이 잘 안 보인다는 측면에서 시야가 흐려진다기보다는 양 눈의 초점이 잘 안 맞는 것 같았다는 말이 정확하다. 내가 와인을 네 잔쯤 비워가고 다섯 번째 잔을 마시기 시작할 때쯤이면 그렇게 양쪽 눈이 한 곳을 바라보지 않고 지들 멋대로 조금씩 다른 방향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느낌이 들 때면 내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와 함께 술을 마시던 내 앞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살짝 사시가 된 내 눈, 나의 모습을 바라볼까 그것이 가장 싫었다.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사람은 그저 내 남편의 친구의 부인일 뿐이고 내가 애정을 갖고 있다든지, 내가 잘 보여야 할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두 번쯤 만난 멀리 아는 사람. 물론 그녀의 직업이 판사라서 같은 법조계라는 측면에서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그녀가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내가 술을 겨우 네 잔쯤 마셨을 때 내 눈이 약간 사시처럼 눈동자 방향이 서로 달라진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역겨울 정도로 싫다는 것이다.



우리 아빠가 그랬다. 늘 잘생기고 웃는 모습이 멋지던 우리 아빠는 언젠가부터 술을 많이 마시면 눈이 사시가 되었다. 술이 심하게 취하면 혀가 꼬이는 것처럼 뭔가 시신경을 관장하는 부분의 신체도 꼬일 수 있는 건가. 아빠를 언제나 사랑하지만 약간 사시가 된 아빠의 모습은 달갑지는 않았다. 사실 사시라는 것이 하나의 단어로 정의되는 증세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의 차이는 현격하게 크다. 나는 유난히 누군가의 눈이 사시인 것을 희한하고 예리하게 아주 잘 알아차렸다. 아주 미세하게 두 개의 눈동자가 조금이라도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 같은 경증의 사시들은 TV속 연예인들 중에서도 많이 보였고 그때마다 남편에게 ‘여보 쟤 사시네’ 끊임없이 처방을 내리고 남편은 오 맞네 그러네 하며 끊임없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인스타그램 속에서도 회사 후배가 끝도 없이 올리는 딸아이의 사진을 볼 때에도 미세한 그 사시가 거슬렸다. 혹시나 어렸을 때 빨리 발견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을 주는 건가 싶어서 오지랖 넓게 그 후배에게 혹시 아이가 사시일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 보긴 했지만 후배는 조용히 기분 나빠하고 끝난 것 같았다. 그놈의 사시. 내가 그토록 거슬려하던 사시.


살면서 내가 본 가장 심한 사시는 영화 기생충에서 주인집 지하에서 몰래 몇 년 동안 살고 있던 그 오근세 역할을 맡았던 배우 박명훈이다. 실제로 만난 건 아니지만 간접 경험으로 영화 속에서 몇 년 동안 빛을 보지 못하고 지하실에서 씻지 못한 채 기생하며 살아가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그런 인물로서 그를 알고 있다. 그러한 인물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단어들을 떠올린다면 ‘기괴’ ‘불쾌’ 이런 단어들이다. 기괴하고, 불쾌한 느낌을 표현하는데 두 개의 눈알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시만 한 것이 없다. 일단 뭔가 좀 불안한 느낌이 들고, 꺼려진다. 심한 사시인 사람과 대화를 할 때면 내가 이쪽 눈을 바라봐야 할지 아니면 저쪽 눈을 바라봐야 할지, 혹시 내가 이쪽 눈을 봤다가 저쪽 눈을 보고 그러는 게 그분이 기분 나빠하진 않을지 혼란스럽고 뭔지 걱정된다. 이토록 내가 이유 없이 불편하게 느꼈던 사시 증세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려니 솔직히 너무 충격적이었다.


느낌만으로 조금 뭔가 이상한데, 생각이 들었던 시점에 눈을 위로 치켜뜨고 셀카를 찍어보았었다. 그리고 그 핸드폰 속에 있는 나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평생 불편해하던 그 사시의 눈동자 방향이 내 눈 안에 있었다. 정신을 집중해서 또렷하게 렌즈를 바라보고 찍는 사진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얼굴 나의 눈동자가 보였다. 그러나 좀 힘을 덜 주고, 오히려 힘을 빼고 아무 데나 굴러가게 둔 눈동자의 상태를 두고 사진을 찍으면 눈동자들이 길을 잃고 있었다. 내가 지금 표현을 하다 보니 너무 충격적이었어서 아예 까만 눈동자가 마치 양 반대쪽으로 향해있는 건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정확히 말을 하자면 이 또한 사시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 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만은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미세하게 각도가 2~5도 정도는 방향이 분명하게 달랐다.


아. 내가 간헐적 사시라니.


40이 가까워지자 사실 낯설게 다가오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무제2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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