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지
가방 좀 잘못 싸갈 수도 있지
어제 애를 잡았다.
숙제를 못해갈 상황을
내가 미리 알고 있었다면
'그럴 수도 있지' 매직이 잘 통했다.
그런데 가방에
학원 책을 빼놓고 학원 다녀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
진짜 분노가 마그마처럼 끓어 올라서
머리통으로 폭발해버릴 것 같다.
학생이 모르는 게 있는 게 당연한 거니
시험은 좀 틀릴 수도 있는 거지만,
또 이것저것 바빠서
숙제를 덜 해갈 수도 있는 거지만,
공부할 책을 빼먹고 공부를 하러 갔다?
나는 그 기본적인 자세가 안되어있음이
이해가 안 되고 너무 화가 난다.
어제가 그날이었다.
영어 학원에 영어책 없이 다녀온 것이
딱 걸렸고
나는 불처럼 속상하다며 마구 화를 냈고
애는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다음번에는 꼭 책을 잘 챙기겠다고
불쌍한 강아지처럼 풀이 죽었다.
그런데 어제는 아이의 생일이었다.
생일을 축하하려고
엄마 아빠가 부랴부랴 작은 케이크를 들고
과속 질주해서 달려왔었고
케이크에 초도 불고
잡채도 먹고 아이가
동생과 함께 노래도 불렀던 저녁이었다.
아이를 즐겁게 해주고 싶었던,
태어났던 그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던 그날,
고작 가방에 책 하나 안 가져갔다고
애를 그렇게 비난하고
애한테 큰소리치고
결국 아이의 반성과 사과를 듣고
싸늘한 분위기로 마무리해 버리고 나니
이제 내 몸에는
맥 빠진 슬픔만이 찌꺼기처럼
눌어붙어있다.
가방 좀 잘 못싸간 게 별거라고.
겨우 열 살인데.
학원에서 넉살 좋게 학원 책 빌려서
수업 잘하고 왔다는데 그러면 되었지
적어도 가방은 잘 챙겨야지!라는
나만의 기준을
온 국민 스탠다드로 생각하고
애를 잡을 일은 아닌데.
대체 나는 왜그랬니.
얼굴 뽀얀 찰떡같은 우리 복실이 강아지를.
그럴 수도 있지.
이럴 때 필요한 건 나에게도
'그럴 수도 있지' 매직
엄마라고 어디 다 완벽한가
엄마도 인간인데
열 살 아들은 처음인데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다음엔
별것도 아닌 걸로
착한 우리 아이
잡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