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수험생, 로스쿨 베이비
주위에 직장생활을 하다가 로스쿨에 입학했던 언니들이 입을 모아서 조언을 해줬다. 나중에 일하면서 아기를 낳는 것보다 학교에 있을 때 아기 낳는 게 훨씬 더 좋다는 것이었다. 변호사일은 업무 강도가 남다르고, 한참 일 배우기 시작할 때 애매하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진짜 그럴 것 같았다. 그래서 로스쿨 오자마자 결혼도 한 김에 아기도 낳아야지 마음을 먹었다.
근본적으로 로스쿨 입학 하자마자 1학년 1학기 여름방학에 결혼을 했던 이유는 그냥 이 사람이 너무 좋았다. 대학교 4학년 때 소개팅으로 만나서 불꽃같은 연애를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 로스쿨 입학하는 시점에는 연애한 지 3년이 넘어가는데 로스쿨 졸업까지 굳이 기다렸다가 결혼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나보다 6살 많은 이 잘생긴 남자를 계속 그냥 남자 친구로 두었다가는 누가 채갈까 봐(?) 걱정 아닌 걱정이 되었다. (그때는...^^)
그래서 결혼도 결심하고, 신혼도 1년 정도 즐기고 임신도 결심했다.
비교적 어린 연나이 26세에 결혼을 해서인지 마음먹은 대로 다행히 임신도 잘되어서 로스쿨 2학년때부터는 임신부로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다. 임신을 한 상태로 어려운 법공부를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입덧도 입덧이었지만, 나는 무엇보다 쏟아지는 잠을 정말 참기 어려웠다. 원래도 잠이 많아서 학교를 다닐 때부터 지각대장이었는데 임신을 하니 정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잠을 이기기가 어려워서 시도 때도 없이 졸고 다녔다. 수업시간에도 꺼덕 꺼덕 조용히 졸고 검찰 실무수습을 가서도 까닥까닥 졸고... 아이고 내가 이 답답하고 숨쉬기 힘들고 졸린 임신만 끝나면 진짜 열공한다고 출산을 벼뤘다.
그렇지만 이는 엄마들이라면 모두 웃어버릴 그런 다짐이었다.
애가 배 안에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는 명언을 초보 임산부인 나만 모르고 있었다.
로스쿨에서는 3학년이 변호사시험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기간이라 가장 힘든 시간인데 아무것도 모른 나는 로스쿨 3학년 올라가는 해의 2월 중순에 아기를 낳았다. 그러니 산후조리를 딱 2주만 조리원에 있다가 3월 개강을 맞춰 학교에 갔다. 나는 그냥 아기를 낳으면 귀여운 아기가 하나 나에게 생기는 거고 그 아기가 내 삶에 미칠 큰 파장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런데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내 삶의 난이도 측면에서 레벨이 1이었다면 약 100 정도 되는 것이었다. 일단 신생아가 2-3시간마다 한 번씩 먹고 자고 싸고 울고 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이었다. 왜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는 전혀 교육을 해주지 않는 것일까? 실과 과목에서 실로 옷감 꿰매기는 잘만 알려주면서 왜 출산과 육아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주지 않은 것인지 교육부장관에게 따지고 싶었다. 아니 아기를 낳으면 그냥 일반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생활은 아예 불가능한 것이었다. 나에게 학교에서 아기를 낳는 것이 낫다고 조언을 해줬던 언니들은 모두 미혼인 언니들이었다는 것을 내가 간과하였다.
일단 단순하게 심미적인 기능을 담당하던 가슴이 기능성으로 전환이 되는 것이 너무너무 너무나 놀라웠다. 멋진 모습 보여주던 내 가슴에서 아기가 살기 위해 먹는 음식이 나온다는 것이 정말 센세이션 했다. 그것도 인공지능이 탑재된 것처럼 아기가 먹어야 되는 시간을 맞춰서 알아서 젖이 충전이 되어서 아기가 다 먹을 양이 채워지고, 아기가 다 먹으면 또 다음 아기가 먹어야 되는 시점까지 조금씩 차오르는 것이 AI 뺨칠 일이었다. 아기가 먹을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쿨쿨 자고 있어서 먹을 시간이 좀이라도 늦어지면 유선이 부풀어 가슴이 단단해지고 약간 아파지는데, 잠에서 깬 아기가 힘차게 젖을 빨아먹어주면 내 유선에서 모유가 빠져나가는 것이 정말 세상 시원했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그리고 비록 내가 낳았지만 처음 마주해서 너무나 낯설었던 아기가 모유 수유를 하면서 마주 보고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으면서 더 사랑스러워지고, 대견하고, 안쓰럽고, 귀엽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낭만은 잠시, 아기 신생아 시절은 정말 고되었다.
학업에 미친 듯이 몰두를 시작해서 매일 같이 공부한 양, 나간 진도에 뿌듯했어야 할 로 3 수험생이, 아기를 2월에 낳고 로 3 생활을 시작하니 학교에서 비축해갈 모유의 양이 내 뿌듯함의 척도가 되었다. 내가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친정엄마가 아기를 전담해서 봐주었고 나는 학교에서 열심히 유축기로 모유를 짰다. 학교에 수유실이 있긴 했지만 멀리 가기도 시간이 아까워서 어떨 때는 여자화장실 한 칸에서 열심히 유축기를 돌렸다. 슈웅-푸슉 슈웅-푸슉 희한한 소리를 가끔 언니들이 알아차리고는 배지, 유축하는구나! 힘내라며 따스한 위로(?)를 건네주기도 했다. 밤에 집에 돌아가서는 하루 종일 엄마를 못 봤을 작은 아기가 안쓰러워서 매일 끼고 품고 잤는데, 나의 아기는 잠투정도 엄청 심하고 통잠을 거의 자지 않는 그런 예민한 아기여서 매일 인간으로서 요구되는 기본 수면시간을 확보하기도 어려웠다. 결론적으로 만삭일 때 보다 신생아를 둔 사람이 훨씬 잠을 자기 어려웠고 그래서 훨씬 더 졸렸다. 신생아 산모를 겸한 로스쿨 3학년 수험생은 눈 밑에 다크서클이 아주 짙게 드리워졌고 늘 피곤하고 졸려서 육아도 제대로 못하고 공부도 제대로 못하면서도 수험생네 친정엄마의 많은 희생도 요구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이전과 다른 차원의 인간이 되어야 했다.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작은 인간을 위해 알아야 할 것도 많고, 계속 주문해야 될 물건도 많고, 들여야 할 시간도, 체력도 엄청났다. 수험생활이라는 시기가 나에게는 우연히 겹쳐지는 바람에 더욱 고난과 같은 시간이 되기도 했지만 엄마가 된다는 그 사실은 정말 스스로 한 인간으로서 해야 할 1인분을 넘어서기를 기본적으로 요구받는 것 같았다. 잠도 계속 잘 못 자면서 우는 아기를 달래고 내가 먹고 마시는 음식과 물로 아기가 먹을 양분을 만들어 아기도 먹여 살려야 하는 그 기간. 많은 궁금증들이 있지만 시원하게 답해줄 사람도 없고 그냥 말 못 하는 아기가 이런 건가 저런 건가 지레짐작만 하면서 뾰족한 해결책 없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아기도 크고, 엄마로서의 경력도 미세하게 쌓여가며 엄마도 크는 그런 시간. 엄마가 되면 하루하루가 고비처럼 느껴져서 그 시간을 채워내는 것만으로도 그 어느 때보다 나는 체력이 달리고, 일상이 버거웠다.
누구도 한 번도 알려주지 않았던 엄마가 된다는 것의 무게. 그것은 정말 상상이상으로 힘든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