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캐디

응원의 힘

by 배지

가까운 해외에 골프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회사생활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지금 실력으론

어림없어서,

단기에 집중적으로 공략해서

조금이라도 나아져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갔다.

3일 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레슨과 필드레슨을 함께 병행하는 그런 일정이었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이 우리나라는 팀당 1인 캐디가 함께하는데, 이곳은 1인 1 캐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4인플레이를 하는데, 카트 2개를 가지고

플레이어 2인 캐디 2인 이렇게 타고 다니는 것이었다.

운전을 플레이어가 하는 것도 신기했다.

캐디들이 뒤쪽에 서있는데,

서서 오케이오케이~ 외치면

플레이어가 붕 하고 출발을 매 홀마다 했다.


1인 1 캐디라고 하길래 처음에는

웬 인력낭비인가.

한국은 똑똑한 캐디 한 명이

4명을 모두 커버하고 클럽도 착착 주고

공도 다 놔주고 닦아주고 나이스샷도 다 외쳐주는데!

도대체 4명씩이나 함께 다니면서 할 일이 뭔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다녀보니 1인 1 캐디라는 것의

엄청난 장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캐디'가 생긴다는 점이었다.

나의 캐디는 나만 바라보고 있다.

나의 캐디는 내가 공을 잘 치면 진짜 기뻐하고

내가 공을 잘 못 치면 엄청 실망해서 어깨가 축 처졌다.


나의 캐디는 더워 죽겠는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느라

모자 밑 뿔테 안경에 김이 조금씩 서려있는 여드름 난 어린 친구였는데


내가 잘 못 쳐서 공이 굴러가 다말면

베트남어로 너무 아쉬워하는 얼굴로

모든 손과 발을 써서

'너 머리를 가만히 두고 쳐야지 머리가 따라가면 공이 잘 맞겠니'

이런 말을 행동으로 열정적으로 해주었다.

정말 희한하게 베트남말이지만 너무 잘 알아듣겠어서

내가 알았어. 하고 그다음에는 머리를 그 자리에 두고 스윙을 했더니

공이 아주아주 멀리 잘 날아갔다.


그러자 나의 캐디는 진짜 기뻐하면서

'그봐! 머리를 가만히 두니까 공이 잘 맞는 거야! 절대 공칠 때 머리를 확 들어버리면 안 된다고!'

라고 베트남어로 하면서 손짓 발짓 했다.

나는 베트남어를 하나도 모르지만

정말 백 퍼센트 알아들은 것 같다.


그리고 매 홀마다 내가 잘 치면 진짜 기뻐하고

못 치면 너무 아쉬워했다.


4명이 각각 한 명씩 캐디가 함께하니

그 캐디들끼리도 자기 선수가 잘 치면 우쭐하고

못 치면 의기소침하고 그런 재미있는 분위기였다.


결국 18홀이 끝나고 캐디에게 캐디피를 줄 때

한국에선 느껴보지 못한 뭔가 끈끈함과 고마움이 더

마음에 묻어났다.

(그렇지만 외국돈 특히 베트남동은 단위가 너무 커서

외국에 나가면 쫄리는 이상하게 졸렬한 감정 탓에 캐디피를 더 얹어 주지는 못했다.)





일정을 잘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

강아지가 정말 꼬리가 빠지게 흔들면서

내가 반가워서 좋아 죽었다.

강아지라는 존재가 너무 사랑스럽고

좋아 미치겠는 이유도 나만 바라봐서인 건가 싶었다.


내 캐디도 (그 게임에서) 나만 바라보고

내 강아지도 (어쩔 수 없으니) 나만 바라보는데

내 남편, (남편 입장에서는 내 부인)은

거의 서로 바라보지 않고 소 닭 보듯 하니

부부의 일상은 재미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애초에 아이러니 같기는 하다.

예전같이 한쪽이 다른 한쪽 가장을

온전히 의지하는 부부라면,

의지하는 쪽이 가장을 열심히 응원하고

가장은 응원을 먹고 힘을 내서 더 잘하고

배우자의 응원에 고마워하고

이런 패턴이 예전의 가부장사회였을 것 같다.

다만, 서로 말은 안 하지만

돈 벌어오는 쪽이 좀 더 으스대고

응원을 맡은 쪽이

좀 더 상대방을 치켜세우고 스스로를 낮추고

이런 균형이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에 비해

부부가 둘 다 가장인 경우가 더 많을 텐데

서로 자기가 잘났다, 내가 더 애쓴다 이런 마음이라

너는 왜 나를 응원 안 하냐? 왜 내가 힘든 거 안 알아줘?

하며 알아주지 않는다고 샐쭉한 표정을 매일 짓는다.

맞벌이 구조상 각자 자기의 힘듦은

알아서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데

한쪽은 스스로 해결하는 와중에 다른 한쪽이

상대방에게 왜 본인 힘든 거 안 알아주냐 징징거리면

그런 너는 나 힘든 거 알아주니? 하고는 파국을 맞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응원해 주는 아름다운 방법도 있겠지만

둘 다 서로 지가 잘났다고 잘남을 경쟁하는 관계로

치닫는 부부관계는

응원도 없고 재미도 없고 기쁨도 없고

무엇보다 점점 관심이 없어진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참 희한하다.


사실상 남인 회사 동료들과는 하루 종일 웃고

웃겨주고 응원하고 얘기 들어주고 그러다가

집에 와서는 목석처럼 얼굴 근육을 하나 안 쓰게 된다.

근엄한 내가 된다.


여드름 난 베트남 캐디도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면

재미있고 웃기고 고맙고 좋은데

왜 난 캐디만큼도 응원을 못해주고

또 응원을 받지 못하는지

그래서 점점 재미없게 살게 되는지

진정한 미스테리다.

재미있고 따뜻하게 살아도 되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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