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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 Sep 04. 2023

우주와 인간의 닮은 점        : 비밀

- 영화 오펜하이머 리뷰 (스포 없음 안심)


고등학교 때 물리부 서클에 가입했었다.


문과와 예체능계열을 고2까지 고민했던 나였지만 서클만은 물리부에 가입했었다. 큰 고민은 아니었고 공부 좀 한다는 언니들은 다 물리 부래!라는 친구의 말에 바로 가입 원서를 제출했었다.


학교에 물리부는 있지만 생물부나 화학부는 없었기 때문에 축제 때가 되면 분진폭발 실험 시현을 해 보이며 앞머리도 태워먹고 토끼해부도 선보이곤 했었다.


그러나 그중 제일 재미있던 것은 바로 언니들이 알려주었던 양자역학이었다.



양자역학은 사실상 직관적이고 간단했다. 모든 물질을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면 아주 작은 단위의 입자가 되는데 그 작은 레벨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들이 양자 역학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빛도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진 것이고 다만 이 입자들은 이중성이 있어서 자이기도 라고 파동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면서 고등학교 때 과학시간에 배웠던 것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등학교 시절이라고 하면 무려 20년 전이기 때문에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 맞아 아 그 손가락 세 개 펴고 계산하던 공식? 하며 기억을 더듬어 보기는 충분하다.


영화 초반부에는 오펜하이머라는 과학자에 집중하다 어느 순간 이론들을 따라가다 중반부로 갈수록 핵폭탄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의 과정에 얹혀지는 그 사람의 개인사가 점점 더 눈에 들어온다.


나는 오펜하이머를 처음에는 그 탁월함에 부러웠다. 나는 그저 하나의 사기업의 개미로 월급 받아가며 이 회사가 입은 손해 내놓으라고 아등바등 싸우는 인생을 보내고 있는데,

그 탁월한 과학자들은 지들끼리 이건 누가 잘하고 저건 누가 잘하니 거기 가서 그 사람을 만나서 같이 논문을 써봐,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버드 프린스턴과 유럽을 넘나들며 까만 우주의 법칙을 천재적인 두뇌로 인류의 지식 발전에 틀을 깨고 있구나.


나만 참 우주의 먼지처럼 살고 있구나.


그러다가 오펜하이머가 처음부터 남편 있는 여자와 임신을 하고 결혼을 하고 그 와중에 또 첫사랑을 못 잊어 만남을 갖다가 그 여자를 잃는 괴로움을 본인 와이프에 기대는 것을 보며 아오 이런 나쁜 색히가 있네 싶었다. (쓰레기네 똑똑하면 다냐!)


그렇지만 눈이 움푹 들어간 오펜하이머가 햄버거집도 운영 못하지만 프로젝트는 해낼 수 있다는 일념 하나 만은 굳고, 다소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하지만 얇디얇은 소신을 지켜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워할 수 없고 응원하는 마음이 가득해져 버렸다.




이름도 모르던 오펜하이머라는 인간을 부러워도 했다가 쓰레기로 취급도 했다가 짠해져서 끝까비 응원하게 된 건 모두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이라 가능한 것이었겠지. 나도 언젠가는 오펜하이머처럼 탁월하게, 크리스토퍼 놀란처럼 세상을 놀란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데.


내 현실은 집에 가는 470 버스 안에서 엄지로 열심히 타자만 두들기고 있다. 그저 부러워하면서.




우주와 인간의 닮디 닮은 점은 비밀을 품고 있다는 점 아닐까. 우주는 인간이 있는지 없는지도 신경 쓰지 않겠지만 어쨌든 인간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모르는 비밀이 너무나도 많다. 인간도 하나의 인간이 소우주라고 할만큼 나도 나를 모르고. 너도 나를 모르고. 부모 자식 간이라도, 부부사이라 하더라도 비밀은 넘쳐난다. 스스로 조차 스스로를 잘 모르니까.

그 점에서 우주와 인간은 참 닮았다.


20230904 월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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