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유난스러운 구석이 있는 아들을 키운다.
전화를 엄청 해대는 초등학생이 아들이면
하루에 20통은 기본으로 받아햐 한다.
기분 좋은 전화면 그래도 좋으련만,
대개는 게임 시간제한을 늘려달라는 전화,
아니면
학원 숙제가 덜 끝났는데
힘드니까 그냥 집에 가면 안 되냐는 전화,
아니면
동생이 어쨌고 저쨌고 그래서
너무 짜증 나 죽겠다는 전화
아니면
놀다가 짐볼에서 넘어졌는데
팔뒤꿈치가 부러진 거 같다는 전화.
나는 직장을 잘 만나
B2B로 십여 년 일하면서
남의 감정을 떠안아야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초등학생 민원인은
집에 앉아서
멀리 광화문에 앉아있는 내 귀에
오만 짜증을 죽어라고 내뱉는다.
아들 이름이 전화기에 뜨면
정말 거절을 누르고 싶은데
애미된 마음에 자석처럼 어쩔 수 없이
통화버튼을 누르면
귀라도 좀 멀리 떼고 듣는 시늉만 해야지
다짐을 하지만 영락없이
민원인의 민원이 내 고막을 파고들고
나도 모르게 짜증을 듣다 보면
내 안에서도 짜증이 차오른다
그래서 나보고 지금 어쩌라고
이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그러나 지 속상하다는 말이니
그래 너 속상했겠다
이 멘트를 기계처럼 읊는다.
듣는 민원인도 내가 감흥이나 진심 없이
그래 너가 속상했겠구나
말하는 걸 듣고 딱히 위로받진 못하는 거 같다.
퇴근시간 넘어서
보고서를 쓰고 있는 나에게
짐볼 위에서 뛰다가
팔꿈치가 부러진 거 같다고
우는소리 하는 민원인 전화를 받으면
무언가 가슴에서 탁 하고
심지가 끊어지는 것 같은 마음이 들면서
위로 답변을 낼 수가 없었다.
그러게 너 엄마한테 말도 없이 어디 가서 놀다가 그러는 거야!!!
호통 한번치고
아직 시작도 안 한 내 주말이 소멸되어 버릴
위기감을 느끼며 얼마큼 아픈 건지 이것저것 물어본다.
아무래도 자기 팔꿈치가 금 간 것 같다는 애 말에
응급실에 가야 되나
남편에게 전화를 해보면
친구들과 저녁 먹는 자유시간이
막 시작했는데 지금 바로 종료될까
두려움에 떠는 남편이
괜찮을 것 같다고 급 마무리하는 말에
맛있게 먹어~
비꼬듯이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알았다며 끊는다.
나는 내 열한 살 아들의
오롯한 감정의 쓰레기통이다.
그리고 나는 자꾸 입이 마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