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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 Oct 30. 2023

고환 이식 수술을 믿었다고.

사랑이라는 것에 대하여


진부한 말이지만 사랑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콩깍지가 씌어서 객관적인 정보는 무시되고 정상적인 사고는 마비된다. 우리는 왜 사랑에 빠지면 눈이 멀어버릴까.


애초에 결혼이라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너무나 제한된 정보 안에서 파장력이 크나큰 무모한 일이다. 살아온 날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함께 살아갈 사람을 고르는데 길어야 2-3년 동안 알고 지낸 경험만을 바탕으로 한다.  인생의 동반자라는 중대한 결정을 하는데 그 중대성에 비해 짧은 시간, 경험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결혼은 도박이고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 애초에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근거 없는 용기가 필요하고, 제정신으로는 용기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눈이 멀어버리는 편이 나은 게 아닐까 싶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면 번식을 원하는 인간의 DNA는 뇌에 속삭이기 시작한다. 멋진데~? 주위에서 아무리 그놈 못생겼다고 말해도 절대 안 들린다. 말도 못 하게 가난해서 고생길이 열리는 거 아니야? 응 내가 먹여 살리면 되지~ 사랑이 밥 먹여주니? 응 나는 사랑 먹고살지~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특히 반대가 많을수록) 역경을 이겨내야 할 사랑에 대한 믿음은 공고해지고 더욱 불타올라서 결혼에 골인하게 되는 일들이 많다.

 

사실 결혼 생활에 있어서 부부의 서로에 대한 애정과 사랑만 공고하다면 이겨나가지 못할 위기는 없을 것이고 다양한 경험으로 인생은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사기꾼'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비극이 시작된다. 하늘의 별도 따다 주겠다는 로맨스를 믿는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서, 사랑의 감정이 가져오는 맹목적 신뢰를 기반으로 삼아 사기꾼이 사랑꾼을 이용한다.


사기꾼은 기망의 고의를 가지고 재산상 이득을 취하려는 인간이고, 사랑꾼은 무슨 말을 하든 다 믿을 준비가 된 인간이니 비극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여자라고 했는데 성관계를 시도하며 사실은 남자라고 해도 믿는다. 사랑은 사랑이 중요하지 그 밖의 것은 상관이 없다. 트랜스젠더이고 불치병에 걸렸다고 하니 사랑의 심장은 더욱 쿵쾅대며 타오르며 이 사랑을 지켜내야겠다 심장이 뇌에 속삭인다. 분명 성관계는 했는데 내가 임신이라고? 트랜스젠더가 정자를 만들 수 있는 건가? 뇌가 의심을 할라치면 사기꾼과 사기꾼을 사랑하는 심장이 더 이상의 사고를 가로막는다. 게다가 결정적인  한방, 고환 이식 수술을 했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말.


뇌는 죄가 없다. 본능과 감정에 따라, 쿵쾅대는 심장이 시키는 대로 판단했을 뿐이다. 사랑에 빠진 사진 상태에서 정상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될까. 사랑에 허우적 대는 인간은 늘 바보 같고 그 바보스러움에 우연히 역사가 탄생하기도 한다.  인류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랑에 빠진 바보들이 분명 한몫, 아니 큰 지분을 차지했을 것이다. 고환을 땅에 심어서 그 정자가 창문을 타고 들어와서 임신을 했다고 한들 사랑을 믿은 게 뭐가 잘못이 되냐 이 말이다.


잘못은 사기꾼에게 있다. 협박도 그냥 사기도 나쁘지만 연인 관계를 설정한 후 사기를 치는 로맨스사기는 더욱 최악이다. 사랑이라는 가치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자취를 감추게 하고 사랑에 빠져서 바보스러워진 사람을 한심한 웃음거리로 소비되게 해 버린다.


더 흉악 범죄도 많은 이 사회에서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겠지만 사랑을 빙자해 사기 친 사람들은 남의 가슴을 찢어놓은 만큼 사기꾼의 엉덩이가 터질 만큼 사기꾼을 태형으로 다스렸으면 한다. 사랑을 빙자한 사기를 쳐서 남의 마음을 찢어놓은 놈들은 본인도 어디 한번 본인 엉덩이가 찢어져봐야 정신 차리지 않을까 해서. 그리고 숭고하고 소중한 사랑이라는 가치를 더럽힌 대가로 엉덩이가 한번 터져봤으면.


사랑은 죄가 없다, 사기꾼이 죄가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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