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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 Nov 23. 2023

엄마의 아구찜

오늘부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아구찜!!


스시 오마카세를 처음 먹어봤을 때의 충격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스시라는 것 만 알 뿐 세부적으로 뭐가 나올지 모르는 상태로 계속 맛있는 것들을 요리사가 눈앞에서 촥촥 만들어서 내 앞 접시에 계속 한 점 한 점 놓아주다니. 입에 들어가서도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은 스시의 맛에 나는 그날 이후 몇 년 동안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스시'였다.


20대 초반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나는 나이를 먹어가고 월급은 늘어가니, 어렸을 때는 너무나 아쉽고 간절했던 것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크게 감흥이 없어진 것들로 변해갔다.


남산 하얏트 호텔의 테라스 부페도 2009년 처음 갔을 때 야경에 반하고, 민트소스를 찍어 먹는 양갈비에 찐하게 했었다.  테라스에 다녀왔던 그날 저녁이 너무나 인상 깊어서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지만 지금 하얏트 테라스를 한 번씩 가보면 랍스터도 없네 이젠 낡았네 크게 먹을 게 없네 그냥 그저 그런 시간이 되버린다. 현재의 현실보다 과거의 기억이 훨씬 더 아름답다.




오늘도 사람들과 앉아 운 좋게도 오마카세 스시를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누군가 내게

" 음식 중에 스시가 제일 맛있는 것 같아요. 배지연 씨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

라고 물어봤다.


분명 먹고 있던 스시도 매우 맛있었고 평소에도 회도 좋아하고 대게도 멍게 해삼도 스시도 다 좋아하는 해산물 취향이니까 아무래도 '스시' 하고 답해야겠지? 생각은 하는데 입 밖으로 말이 잘 안 나왔다. 누가 서울대 합격의 당락을 좌우하는 면접 문제를 물어본것도 아니건만 순간적으로 그렇게 신중해질 수가 없었다.


'옛날에는 닭죽이 제일 맛있었는데... 지금은 닭죽도  아닌 것 같고.. 스시.. 맛있긴 한데 막 제일 좋아! 죽기 전에 스시 먹을 거야! 이 정도의 끌림은 아니니까 스시 아닌 것 같아... 내가 더 열정적으로 좋아할 음식이 있을 거 같은데...'


끝내 나는 대답을 못하고 어물쩍 넘어갔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절여진 배추가 되도록 회사에서 오후를 보내고 평소처럼 퇴근시간에 집에 터덜 터덜 들어왔다.





그런데,

집에 오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의 아.구.찜.


아 맞네. 오늘 저녁 엄마가 우리 집에 와서 아구찜 해놔 준다고 했었지.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공기의 냄새가 다르다.


옷을 벗을 새도 없이 일단 바로 식탁으로 가서 콩나물과 미나리를 젓가락으로 넉넉히 집어 감고 바로 입 속으로 직행시킨다. (직행시켜!!) 크. 잊고 있었던 그 감칠맛과 아작아작하면서도 양념이 맵지 않게 보드랍게 감겨주는 콩나물 미나리의 맛. 콩나물을 아쉬우니 한번 더! 똑같이 이번엔 더 많이 입에 한번 더 호로록 넣어준다. 크. 너무 맛있다.


이번엔 아구 살코기를 드실 차례다. 가락으로 한 번에 뼈와 살을 촤라락 갈라주니 뽀얗고 찰기 있고 촉촉 탱글한 아구살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걸 그냥 먹거나 아구찜 국물을 찍어먹으면 절대 안 된다. 살짝 식초 뿌린 맑은 초간장에 연겨자가 어우러진 접시에 살을 콕! 찍어서 먹으면.... 하악!

정말 너무나 맛있다. 살코기도 맛있지만 씹을 필요도 없이 보들쭐깃쭐깃한 껍데기 같은 부위들이 개인적으로 더 취향저격이다. (나는야 닭껍질 러버) 그 부위는 씹을 필요도 없이 그야말로 호로록 먹어버리면 끝이다.


그렇게 나는 정신없이 아구찜을 맛보고 즐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구찜을 혼자 두 접시 다먹고 마지막엔 밥까지 비벼서 김싸먹고 있었다...




엄마에게 바로 카톡을 날렸다.


- 엄마, 나 오늘부터 제일 좋아하는 식이 아구찜이야. 진짜 너무 맛있어서 나 울어!


엄마한테 그냥 예의상 한 말이 아니다. 엄마표 아구찜을 정말 눈으로 바라보고 보자마자 자석에 끌리듯이 입으로 음식을 가져가면서 진심으로 너무 기쁘고, 맛있고, 행복했다. 죽기 전에 음식을 딱 하나 고를 수 있다면 단연 아구찜을 먹어야만 구천을 떠돌지 않을 것 같다.


평소에는 생각도 잘 안 났던 아구찜이라는 음식이 갑자기 이토록 맛있을 수 있는 이유가 무얼까.


우리 아빠가 아구찜을 좋아하고 그런 아빠를 위해 엄마는 집에서 아구찜을 종종 해주곤 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집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방법 자체가 (짜장면) 말고는 없었고 거의 매일 세끼를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자랐다.


어른이 되어서 감동하고 맛있다고 느꼈던 음식들은  자주 먹어보고 시간이 지날수록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감흥이 떨어진다.

어렸을 때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한동안 잊고 지냈어도 오랜만에 마주하게 되면 귀한 보물을 찾아낸 것처럼 감흥이 되살아난다.


렇기때문에 내가 오늘 근 1년 만에 아구찜을 먹으며 너무 맛있다며 죽기 전에 아구찜을 먹어야겠다 생각할 정도로 진한 감동을 느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아구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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