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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 Nov 21. 2023

집에서 탕후루 만들어 먹는           4학년

요놈 참 귀엽네


요즘 초등학생들이 집에 와서 놀기 위해서는

'엄마가 떡볶이 해줄게'


이걸로는 안된다.


요즘 먹히는 엄마가 되려면

'엄마가 중경마라탕 2단계로 시켜주고

유부 꼬치 추가 하나 더 하고

탕후루는 아도라포도로 인당 하나씩!'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


이런 엄마스타일 간식은 초딩들은 거들더도 안본다!


이렇게 친구들이랑 놀 때도 간식 메뉴부터 철저하게 미리 세팅하는 우리 아들은 늘 먹는데 진심인 사람이다. 그에 반해 그의 엄마는 주말에 힘도 없고 그저 소파에 늘어져있으니 '엄마 나 탕후루 만들어먹어도 돼?' 물어본다.


무념무상 상태의 나는 공기처럼 응~ 힘 없이 대답하니 조금 후 부엌에서 달콤한 냄새가 보글보글 솔솔 풍겨온다.



아니 대체 누가 이렇게 야무지게 탕후루 만들 준비를 세팅하는 건가. 늘 알림장과 일기장을 빼먹고 가던 우리 4학년 아들 맞니.


그는 귤을 예쁘게도 까서 일일이 나무젓가락에다가 가지런꼽아 놓설탕을 프라이팬에 인심 좋게 부어서 보글보글 끓인다.


걸쭉하게 설탕이 녹아내리자 프라이팬에 흠집이 나지 않을 실리콘 숟가락을 잘도 골라 들고 재빠르게 뜨거운 설탕 국물을 귤 위에 끼얹는다.


그 빠른 속도, 설탕 농도가 알맞다는 과감한 판단, 설탕이 녹기는 하되 타버리지는 않을 정도의 적절한 불 세기. 그리고 무엇보다 대충 앞뒤로 설탕이 잘 발렸다고 생각하면 차가운 얼음물에 퐁당! 전문가처럼 투척하는 손목 스냅.



아들아, 혹시 엄마 몰래 탕후루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해본 거니? '탕후루 만들기 도전'은 내가 처음 해보려고 우왕 좌왕할 것 같은데 4학년 학생은 거침이 없다. 뭐 이렇게 차분하게 꼼꼼하게 잘 만들고 그래 정말 희한하다.


얼음물에 굳혀지고 있는 마지막 공정의 아들표 탕후루


짜잔~

퇴근하고 돌아올 아빠 것까지 야무지게 완성해서 종이 호일로 앞뒤로 살짝 붙이더니 냉장도, 냉동도 아닌 김치냉장고에 투척하고는 그 과정을 끝낸다.


강 건너 불 구경하던 나는 아들에게

'아들아 냉동실에 넣으면 더 꽝꽝 얼어서 맛있는 거 아니야? 냉동에 넣지?'

섣부른 소리나 한 번 했다가

'엄마~ 냉동에 넣으면 과일도 얼어버려서 못 먹어 이빨 나가'


또 한 번 탕후루 박사님 앞에서 깨갱 하고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요놈 참 귀엽다.

낳아놨더니 혼자 집에서 탕후루도 후딱 만들어서 엄마도 주고 아주 신통방통하다.

4학년에 나랑 신발 사이즈가 같을 만큼 쑥 컸지만 아직도 매일 재워달라고 헤헤거리는 요놈.


참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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