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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 Nov 30. 2023

나도 한 번, 비싼 조명을 사봤다.

이름도 긴 '아르떼미떼 톨로메오 메가'


인테리어를 하고 집에 들어와 산지 1년이 지났다. 결혼을 2011년에 하고 2022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내 집'에 입주를 했었으니 감개무량했었다. 11년 동안 묵은 짐들을 버리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짜릿했고, 신혼 때 샀던 구식 가전제품들과는 달리 엄청나게 발전된 기술이 탑재된 청소기 세탁기 인덕션들을 다시 사들이며 입이 쩍쩍 벌어졌었다. 특히나 청소기의 경우에는 무선은 당연하고 충전할 때마다 자동으로 먼지통이 비워지고, 먼지들이 옮겨간 먼지 봉지만 몇 개월에 한 번씩만 빼면 된다니 이 것은 정녕 신세계였다.


늘 전셋집들을 전전하며 이사를 다니는 동안 집을 꾸밀 생각은 엄두도 못 냈었다. 삶 자체가 너무 바쁘기도 했고 어린 아들 둘에 입주 이모님이랑 살면서 그저 하루 먹고 자고 하는 것이 전부였다. 삶이라기보 매일매일이 전투에 가까웠다. 아이들 발달 단계에 따라 알록달록한 쏘서, 국민문짝, 점퍼루, 보행기를 들였다가 아이가 기고 걸으면서는 다칠만한 구석이 집에 없는 게 최우선이었다. 가끔 핸드폰 앱에 예쁜 집 인테리어 사진이 눈에 들어오면 조용히 저장을 누르곤 했지만 나의 삶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아들들이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이었던 작년, 나에게도 태어나서 처음 인테리어를 할 기회가 다가왔다. 더 이상 장난감들이 집에 즐비하지 않아도 되고, 각이 살아있으면서 시크한 것들이 우리 집의 일부가 돼도 되는 시점이 온 것이다. 다만 집 인테리어가 첫 경험인 만큼 아쉽고 실수를 한 부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애정을 듬뿍 쏟아 하나하나 결정한 우리 집은 이미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매일 봐도 (내 눈에는) 늘 설렌다.


- 마루 바닥은 늘 눈여겨보아 왔던 타일 느낌의 강마루를 골랐고 이 마룻바닥은 밟을 때마다 차갑지도 않고 너무 단단하지도 않아서 매일매일 만족한다.

- 몰딩과 걸레받이가 아예 없는 인테리어도 고려했었지만 적당히 비용과 실용을 타협하느라 최소한으로 작은 몰딩과 작은 걸레받이로 둘렀는데 이 역시 크게 거슬리지 않고 만족한다.

- 작은 욕실 두 개지만 조적욕조와 조적 파티션을 만들어 나에게는 고급스러운 호텔식 화장실처럼 느껴지는 것에도 만족한다. 은은하고 우아한 타일들과 무광 니켈 수전도 일 년 내내 샤워할 때마다 그것들을 어루만지며 혼자 좋아하곤 한다.


나는 우리 집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랑하는 집에 살면서도, 인테리어를 마치고 입주한 지 일 년이 넘어가고 햇수로 두 해가 넘어가려는 시점이 되자 이제는 꼭 한 점, 아름다운 가구를 들이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크고 세련된 조명이 확 꽂혔서 눈에 아른거렸다. 꽂힌다는 것은 이유도 잘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원하게 되는 느낌인데, 네이버에 한 번 검색을 하자 그 후로 자동적으로 내 주위 모든 구석구석에서 알고리즘의 영향을 받은 맞춤형 광고들이 톨로메오 조명을 빨리 사라고 울부짖은 영향도 솔직히 무시 못했다.


내가 꽂힌 아르떼미테 톨로메오는 갓 사이즈가 다양했다. 조금 손품을 팔아보니 그중에서 메가라는 가장 큰 사이즈가 가장 예쁘고 인기가 많다고들 했다. 두말할 것 없었다. 단 남편 설득부터 들어갔다.



뭐를 하나 사려고 할 때 나의 남편은 웬만하면 싫어하고 반대하고 본다. 그래서 강하게 나가야 승산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일단 사지 마라 그게 왜 필요하냐 꼭 필요하냐 잘 생각해 봐라 충동적으로 그러는 거 아니냐  모든 잔소리를 뚫어내야만 소비를 하나 할 수 있다.


맞벌이 부부라 내가 돈을 받아서 쓰는 입장도 아니건만 남편의 잔소리는 나를 나도 모르는 사이 옥죄여온다.


사고 싶으면 사라는 그 지오디의 거짓말 노래 같은 반대 의미가 깔린 그 말.


잘 가~ (가지 마)

행복해~ (떠나지 마)

나를 잊어줘 있고 살아가줘~ (제발 가지 마)


이 노래 남편 버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고 싶으면 사~ (사지 마)

사고 싶으면 사야지~ (나는 사는 거 절대 싫다)


이런 뜻인 것이다. 이때 나는 보통 아오 그래 사서 뭐 하냐 그냥 말자 안 사면 돈 아끼고 좋지 물러서서 포기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정말 꼭 사고 싶었고 반어법의 뜻을 후벼 파서 제발 사줘 예쁘다 옆구리 찌른 답을 얻어내고는 마음 편히 결제 후 배송을 기다렸다.




상상과는 다른 느낌의 조명과 거실 아우라

음.....


사실 참 식빵처럼 생겨서 미적으로는 끌리지 않았지만 눕는 순간 몸을 구름처럼 포근하게 안아줘서 선택했던 저 소파 덕인지 내가 예상한 그림은 아니었다. 귀신같이 눈치가 빠른 아들도 "엄마, 막 우리 집에 막 엄청 잘 어울리지는 않네?" 옆에서 팩트 폭격 해댄다.


뉴 조명 아래서 책보는 아들


어쩔 수 없다. 개봉 시 반품 금지였다. 조명에 맞게 나머지 집을 인테리어 하면 될 일이다. 또 보다 보니까 나름 내 이상적인 느낌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분위기가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괜찮아야만 한다)



어쩌면 조명이 안 어울린다기보다 내가 그린 이상적인 그림이 아닌 이유는 남편이 영롱한 조명 아래에서 '아빠 스타하는 거 봐라!!' 하며 양쪽에 아들들을 앉혀두고 게임에 열을 올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명을 사는 것을 결심하고, 이 모델 저 모델 골라보고, 최저가로 살 수 있는 법을 알아보고, 그 와중에 남편을 설득( 협박 아님) 하고, 소중한 조명에 흠집이라도 날까 걱정하며 조심 조심하는 마음으로 조립을 하고, 완성된 모습을 바라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사실상 마치 연애를 하는 것처럼 기쁘고 설렜다. 그러나 조명 설치 완성! 은 곧 완성인 동시에 감가상각의 과정만 남았다 생각하면 허무하기 짝이 없다. 마찬가지로 결혼은 연애의 완성품이지만, 동시에 죽는 날까지 (이혼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연애감정의 감가상각 과정일 뿐이라고 본다면 그보다 더한 고행길이 없다.


실질적 객관적으로 훌륭하고 멋있기로 전 세계에 소문난 명품인 조명을 결단을 거쳐 반품불가로 샀는데, 막상 우리 집에 들이니 찰떡같이 들어맞진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좋아죽겠다고 시작한 이 조명. 조명도 나만 믿고 강 건너 물 건너 우리 집에 왔는데 어떡할 거야. 


내 사랑하는, 첫눈에 반한 키 큰 조명을 품고 죽을 때까지 잘 살아보기로 한다.



나는 지금 어디까지나 새로 산 아르떼미떼 톨로메오 메가 조명에 대한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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