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도 아파트 같은 동 같은 층 바로 옆집이었는 던 것처럼, 이웃집이라는 것은인간관계에생각보다 큰 이점을 준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자연스럽게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내가 초콜릿집 사장님 부부네와 친해지고 나서 보니 내 친구네 부부는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멋진 사람들이었다.
초콜릿을 만드는 것도 아예 카카오빈 자체를 다양한 외국 산지에서부터 직접 들여오는 것으로 시작해서 콘칭 작업 등 정녕 하나의 초콜릿 바로 탄생시키고 온오프라인 몰을 운영하고 홍보해서 카카오다다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는걸 부부 두 명이서 (아이를 동시에 키워내며) 오롯이, (강조하지만 단 둘이)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집에 놀러 가볼 때면 그 멋짐은 더욱 흘러넘쳤다. 공간에 맞는 멋진 그림, 따스한 조명, 아름다운 모빌, 편안하면서도 넉넉한 그런 테이블과 의자가 잘 놓여있었다.
더 멋지다고 느껴지는 것은 이 둘은 음식에 정말 진심이라는 점이었다. 사실 손님을 초대할 때 음식이 가장 신경 쓰이는 면이 많아서 나의 경우에는 맛있는 모둠회를 주문해서 넉넉하게 준비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상 다시말하면 내가 직접 준비는 어렵고 시켜서 준비해 둔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솜씨를 발휘한다고 해도 그것은 몇 가지 그저 인스타그램에서 본 보기 예쁜 사이드 음식 같은 것들일 뿐이다. 파스타 같은 걸 해보려다 타이밍이 안 맞아서 실패한 경험들이 있어 손님맞이 음식을 직접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친구네 집은 음식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서 가끔 놀러 가게 되면 늘 진심 가득한 음식을 준비해 준다. 누가 온다고 해서 힘을 뽝 줘서 일부러 만든 그런 음식들 말고, 그 둘이 늘 평소에 진심으로 준비해서 먹던 그런 멋진 메뉴를 손님들도 맛볼 수 있게끔 해주는 그런 느낌이다.
친구네는 연말 겨울이 다가오면 과메기 먹을 때가 되었다며 늘 직접 손질해서 먹는 것이 제맛인 과메기를 주문하곤 한다. 친구를 잘 둔 덕분에 나는 거의 매년 식당에 가지 않고도 제대로 된 과메기를 맛볼 수 있다.
영롱한 빛깔의 과메기. 그리고 같은 철에 또 제맛인 굴보쌈도 빠질 수 없다.
물론 끼리끼리는 사이언스라고, 함께 친하게 지내는 다른 멋진 영화감독 친구네 부부가 직접 굴과 김장김치를 공수해 왔다. 솜씨 없는 나는 그저 맛있는 와인두병을 지참해서 가고 이 맛있고 정성담긴 음식을 와구와구 배 터지게 먹었다.
샐러드 하나도 나는 그저 양상추에 방울토마토 정도 곁들일 텐데 내 멋진 친구네는 색색깔 방울토마토에 작게 썬 브리치즈 조각들에, 올리브에, 바질페스토가 들어간 맛들어진 소스를 잊지 않았다.
거기에 또 함께 만난 다른 친구네가 준비해 온 슈톨렌까지. 참 내가 친구들을 잘 두었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그런 정성이 없다면 이토록 풍성하고 따뜻한 시간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대망의 방점 한정수량 신상 제피 초콜릿 디저트까지...
제피 초콜릿이라니.
멋진 내 친구 부부네가 아니라면 이런 기발한 생각을 누가 해낼 수 있을까?
제피는 경상도에서 추어탕 장어탕에 넣어먹는 산초라고도 하는 향이 독특하고 맛은 알알한 그런 나무 열매인데 중국 쓰촨에서 매운맛을 내는 요리를 할 때 넣기도 한다고 한다.
이 제피가 초콜릿과 만나니 정말 위스키 안주로는 장난 아닌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풍미를 안겨준다. 내 새끼도 아니건만 내가 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내 멋진 친구네가 이 세상에 없었던 멋진 초콜릿을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와구와구 신나게 먹었다.
멋진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다. 지금은 비록 둘 다 그 아파트에서 이사를 해서 둘 다 더 이상 망원동에 살지 않지만, 윗집 아랫집으로 살 때 내가 샤워를 하며 샹들리에~ 샹들리에에에 를 간드러지게 (나도 모르게) 불렀던 날이면 유머 넘치는 내 친구는 '어 야 노래 잘 들었다 샹들리에' 이렇게 바로 카톡을 보내오곤 했다. 그럼 나는 다음 샤워 할 땐 음정 삑사리에 더욱 신중을 기하며 목청을 가다듬곤 했다.
이제는 이사를 했으니 오가며 볼 일은 없지만 그래도 나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 사는 그날까지도 매년 날씨가 영하가 되는 계절이면 내 멋진 친구 부부네 놀러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가서 매년 그 진심인 음식들에 혼자 조용히 감탄하며, 좋은 와인 몇 병 들고가서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술을 마시고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을 하며 그렇게 웃고 떠들다가 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