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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자씨 Dec 19. 2021

달과 6펜스, 처자식 버리고 떠난 미친 중년남자 이야기

근자씨의 서재 - 고전

My Prologue


지난 연말인지 올해 초인지 가물하지만, 지인들로 부터 적극 추천을 받은 고전 ‘죄와 벌’을 힘겹게 읽고 나서, 그들에게 푸념했다.

“아니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벌을 주나요!”

평소에 고전에 친숙하지 않은 나에게 ‘죄와 벌’ 읽기는 형벌과도 같았다.

그래도 몇 안 되는 ‘죄와 벌’을 다 읽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되어서 뿌듯했다.

(사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 주변사람들 중에는 읽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의 푸념과 더불어 지인들에게 좀 더 읽기 쉬운 고전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고,

‘오만과 편견’ 그리고 ‘달과 6펜스’ 2권으로 결정했고, 기대했던 대로 두 권의 책 모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남자들이 더 많이 지지한 '달과 6펜스'
왠지 여자들이 더 많이 좋아하는 '오만과 편견'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고 있는 중년의 증권거래인은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처자식을 버리고 떠난다.

미친놈이다.

왜 그랬을까?

책의 1/3을 읽어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냥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모든 것을 버린 것으로 암시할 뿐이다.

민음사에서 출판된 '달과 6펜스'책의 말미에는 아주 친절한 '작품해설'이 있다.


탈없이 살던 한 중년의 런던 증권 브로커가 어느 날 느닷없이 화가가 되겠다고 처자며 직업이며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맨몸으로 집을 나가버린다. 얼마 동안 파리의 뒷골목을 떠돌던 이 사내는 이번에는 태평양의 한 외딴 섬을 찾아간다. 그곳 깊은 숲 속에 자리 잡고 캔버스 앞에 앉아 사는데 결국은 문둥병에 걸려 장님이 된 채 신비로운 그림을 완성하면서 죽음을 맞는다.


이야기가 어찌 흘러가게 되었던, 40대의 한 가정의 가정인 남자가 갑자기 화가가 된다면 뛰쳐나와서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에서 10대 원주민 아내를 얻어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에서 그가 예술가, 화가라는 점을 빼놓았다면

그저 막장드라마 수준의 소설이었을 것이다.


‘달과 6펜스’가 고갱의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다.
몸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예술가에 대한 비전을 고갱이라는 소재를 빌려 창조해 낸 이야기일 뿐이다.
스트릭랜드의 그림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고갱의 그림을 떠올릴 수밖에 없고, 그 묘사는 고갱의 그림과 일치한다.


Epilogue


우리는 찰스 스트릭랜드와 같이 쉽게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없다.

현재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림 그리겠다고 갑자기 처 자식을 버리고 떠나다니.

그 시절에도 약하게나마 그런 인식이 있었던 것일까?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서 떠났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는 장면이 나온다.


스트릭랜드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었던 예술에 대한 갈망이 실행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달빛은 영혼을 설레게 하며 삶의 비밀에 이르는 신비로운 통로로 사람을 유혹한다. <6펜스>란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로 유통되었던 은화의 값이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 ‘달과 6펜스’는 한 중년의 사내가 달빛세계의 마력에 끌려 6펜스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6펜스의 현실을 미련 없이 버리고 달빛을 따라 미련 없이 열정과 욕망의 여정을 떠난 스트릭랜드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대리만족', 혹시 이것이 이 책의 인기비결이 아닐까?

타히티 @구글
Tahiti@Unsplash

인터넷에서 검색한 타히티는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소설뿐만 아니라 고갱 때문에 유명해진 곳이다.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끝나면 가보고 싶은 곳이 하나 더 늘었다.

꽤 멀어서, 쉽사리 가겠다고 마음먹기 힘들 것 같다. 직항은 없다. @Google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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