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씨의 서재 - 세일즈맨이 읽어본 '세일즈맨의 죽음'
세일즈 맨의 죽음 DEATH OF A SALESMAN by Arthur Miller
아서 밀러 / 강유나 옮김 / 민음사
현대 희곡을 대표하는 거장 아서 밀러의 대표작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사랑받은 20세기 최고의 드라마
무너진 아메리칸드림의 잔해 속에서 허망한 꿈을 좇는 소시민의 비극
“이 사람을 비난할 자는 아무도 없어. 세일즈맨은 꿈꾸는 사람이거든.”
나는 세일즈맨다. 이 책의 제목 ‘세일즈맨의 죽음’은 제목 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죽음은 그렇다 치고 하필이면 왜 ‘세일즈맨’ 인가?
그래서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제목만 보고 드는 첫 느낌은, 그 세일즈맨이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합병증이나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 했을 것 같다.
물론 작품속에서 정확하게 무엇을 파는 세일즈맨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책속의 주인공과 같은 세일즈맨은 아니다.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가 10여년 후 영업직으로 전향해서 계속해서 영업업무를 하고 있지만, 사실 영업일업무와 나의 성향은 잘 어울리지 않았다.
내성적이었으며, 섬세하며, 감정상태에 따라 컨디션이 오락가락하는 나의 성격과 영업은 잘 맞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
그럭저럭 잘 버텨내며, 간혹 영업 업무가 잘 맞아 보인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제는 세일즈맨이 어떠한 죽음을 왜 맞이 했는지, 그 궁금증을 풀어볼 시간이 되었다.
"윌리: 생각해 봐. 집을 사려고 평생 일했어. 마침내 내 지이 생겼는데 그 속에 사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요.
린다: 여보, 인생은 버리며 사는 거예요. 항상 그런 거지요." (p.14)
1940년대 미국의 직장인들도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평생 그 빚을 갚으며 살아갔나 보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사는 집 하나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 집을 소유하기 위해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 과연 옳은 걸까?
"해피: 해리슨에서 일할 때를 봐. 사장이 형더러 최고라고 했잖아.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삼류 개그를 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어 대는 바람에.
비프: (해피에게 대들며) 그게 뭐? 휘파람을 불고 싶을 때가 있다고.
해피: 엘리베이터 안에서 휘파람이나 부는 사내를 요직에 앉히지는 않아." (p.70)
엘리베이터에서 휘파람을 불고 싶을 때는 혼자 있을 때만 해야한다.
비프는 이상적이면 해피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장면이다. 하지만, 둘 다 바보 멍청이 모질이 같다. 책을 다 일고 나서는 해피는 현실타협적인 인간이라는 것, 비프는 철이 덜든 어른 이상주의자의 모습으로 보였다.
"윌리: (해피의 말을 끊고 들어오며) 그래, 나를 업신여긴다고? 보스턴에 있는 피리니나 헙이나 슬래터리 상사에 가봐. 윌리 로먼이 왔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보라고! 난리가 나지!" (p.71)
주인공 윌리가 허세를 부리는 장면이다.
보통 별 볼일 없는 사람이 허세를 부리기 마련이다.
"윌리: 우습지 않아? 고속도로 여행, 기차 여행, 수많은 약속, 오랜 세월, 그런 것들 다 거쳐서 결국엔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가치 있는 인생이 되었으니 말이야.
찰리: 윌리, 어느 누구에게도 죽는 게 더 나은 경우는 없네. (잠시 뒤) 내 말 듣고 있어?"
그렇다.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지만,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어떠한 경우보다 죽는 게 더 나은 경우는 없다.
"찰리: 세일즈맨은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하늘에서 내려와 미소 짓는 사람이야.
세일즈맨은 꿈을 꾸는 사람이거든." (p.173)
세일즈맨은 미소를 지어야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복잡한 상황에서도 말이다.
그래서 세일즈맨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세일즈맨이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이유는 꿈을 꾸기 때문일까?
결국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 하는 '세일즈맨의 죽음'
결국 주인공은 진정한 세일즈맨이 되지 못했다.
그가 허세를 부렸다는 것은 그의 장례식에 아무도 찾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세일즈맨이 죽은 것이 아니라 진정한 세일즈맨이 되고 싶어한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 했을 뿐이다.
그러나, 세일즈맨들에게 위안이 되지는 못 할 것 같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194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공연되고 사랑받는 미국 희곡 중 하나.
현대인은 자신의 꿈과 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원래의 꿈이 왜곡되는 허상에 집착하고 매달리게 된다. 왜곡되었음에도 허상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은 현실이 실체로 인식되며, 그나마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은 허상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이 반세기 동안 꾼준히 시공을 초월한 인기를 누리는 데에는 이처럼 그 소재가 인간사의 보편적 소재인 가족, 특히 부자간의 갈등에 기초하고 있고, 개인의 꿈과 희망이 현실과 조화되지 못하고 뒤틀리다가 사라져가는 과정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그려 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15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빵집 배달원 자동차 부품 회사 점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 미시건 대학교에 재학하면서 극작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연방 연극 프로젝트에 참여해 라디오극과 드라마 대본을 집필했다. 1944년 초연된 <행운의 사나이>가 평단의 호평에도 공연 나흘 만에 막을 내렸으나, 1947년 발표한 <모두가 나의 아들>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49년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퓰리처 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작품은 2년 동안 742회 공연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연극계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입센의 작품을 각색한 <인민의 적> (1950), 세일럼마녀재판을 소재로 쓴 <시련>(1953) 등은 당시 미국의 매카시즘 열풍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졌고, 그 때문에 반미 지식인으로 몰려 법정에 서기도 했다. 1956년 영화배우 메릴린 먼로와 결혼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나 1961년 이혼, 이듬해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진작가 잉게 모라스와 재혼했다. 1964년 <추락 이후> 와 <바시에서 생긴 일>을 발표하고 1983년 베이징 인민극장에서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출 했으며, 자서전 <시간의 굴곡>(1987>을 출간하는 등 말년까지 집필과 연극 관련 활동을 쉬지 않았다. 2005년 코네티컷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