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씨의 서재 - 한 여름에 읽는 '여름의 책'
여름의 책
토베 얀손 / 안미란 옮김 / 민음사
‘여름의 책’ 이라는 제목에서 처음 떠올랐던 것들은, ‘무더위’, ‘해변’, ‘비키니’, ‘동남아’, ‘여행지에서 생긴 일’.... 이런 것들 이었다.
책의 앞 부분 ‘추천의 말’ 에서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여름의 책’에는 섬이 있고 바다가 있고 할머니가, 그리고 손녀인 소피아가 있다. 그 뒤에는 일하는 아빠가 있고, 세상을 떠난 엄마도 있다. 여름이 있다. 어느 여름, 모든 여름들, 세부 하나 하나까지. 폭풍, 고요함, 벼랑, 갈대, 만과 협곡, 숲이 있고 요강과 벌레들이 있다.” - 안미란
그렇다면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책일 것이다.
오늘도 예상 밖의 책에서 예상 밖의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고양이
“사랑은 참 이상해.” 소피아가 말했다. “사랑은 줄수록 돌려받지 못해.”
“정말 그래.” 할머니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계속 사랑해야지.” 소피아가 위협하듯이 말했다. “더욱더 많이 사랑해야지.”
(p. 60)
어린 소피아는 ‘사랑’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동굴
행운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p.72)
큰 행운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행운이면 충분하다.
어떤이들은 현재의 삶이 다른 어떤이들이 행운이라고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삶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더 큰 행운을 바라기도 한다.
텐트
할머니가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모든 일들이 점점 작아지고 멀어지고, 전에는 그렇게 즐거웠던 일들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사소해지는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하면 참 허무한 일이지.
(p.90)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큰 ‘자극’을 찾아 헤메이는 걸까?
전에는 그렇게 즐거웠던 일들이 코로나로 하지 못하게 됐을 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지만, 다시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소중함을 다시 잊고 살게 될 것 같다.
손님
할머니는 셰리를 한잔하자고 했지만, 베르네르는 그건 선물이라고, 자기는 셰리를 좋아한 적이 없지만 두 사람이 함께 가지고 있는 추억 때문에, 그 기억이 소중해서 셰리도 소중하게 여겼다고 했다.
(p.141)
사실 할머니도 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오래된 정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뜨거운 여름에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8월
아직 여름이었지만 여름은 더 이상 생명이 없었고, 시들지는 않았지만 정지해 버렸다. 하지만 가을은 아직 올 준비가 되지 않았다.
(p.169)
8월에 대해 이토록 정확하게 표현한 글을 본 기억이 없다.
곧 8월이 오기에 8월에 대한 설명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나의 ‘여름의 책’에 대한 예상 키워드는 모두 빗나갔다.
여름의 뜨거움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내용의 책이다.
솔직히 왜 제목이 ‘여름의 책’인지는 모르겠다.
‘지난 여름의 추억’ 이었으면 더 어울렸을까?
여름의 햇살만큼 자극적이지 않다. 여름밤 잠들기 전에 조금 씩 읽기에 적당한 책이다.
사족이만, 예전에 여행관련 TV 프로그램에서 북유럽 나라들에 대한 내용을 보았던 기억이 있어서, 자연에 대해 묘사되는 부분을 떠올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Tove Jansson
1914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조각가 아버지와 화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 같다. 태생과 환경이 한 인간의 인생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극명하다. 감사해라.) 15세 무렵부터 잡지 삽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헬싱키와 스웨덴 스톡홀름, 프랑스 파리 등지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1945년 ‘무민 가족과 대홍수’를 출간하며 본격적으로 ‘무민’ 시리즈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1966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하고, 1976년 핀란드 사자 훈장을 비롯하여 여러 권위 있는 예술상을 받았다. 평생의 반려자 툴리키 피에틸레와 영감을 주고 받으며 아동 문학뿐 아니라 소설, 미술 분야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2001년 고향 헬싱키에서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