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씨의 서재 - 이방인이 읽어 보는 이방인의 이야기
이방인 (L’Etranger) -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민음사/김화영 옮김
‘카뮈’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아주 오래전이다. 아마도 학창 시절이었을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외국 사람의 이름인데, 그저 ‘멋있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어떤 작품을 썼는지, 어떠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멋있는 이름의 작가로 내 기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방인’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유대인이 선민의식에서 그들 이외의 여러 민족을 얕잡아 이르던 말’이라고 한다.
내가 인지하고 있는 ‘이방인’의 의미는 ‘그곳에 속해 있지 않았던 사람. 외부로부터 온 사람’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내가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받았던 기억이 몇 번 있었다.
처음 독서모임에 참여했을 때, 이직을 하고 출근했을 때, 다른 동호회 모임에 참여했을 때.
이방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뿐이다.
원래 있던 무리들의 문화에 적응하고 순응하거나, 그 무리를 벗어나거나.
그렇지 않다면 계속 이방인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직도 난 ‘이방인’이다.
카뮈의 ‘이방인’은 나와 같은 ‘이방인’일까? 다른 의미의 ‘이방인’일까?
‘이방인’으로서 ‘이방인’을 궁금해하다.
언제나 유명 고전작품이 그렇듯이 Back cover 에는 이 작품을 찬양하는 문구로 가득하다.
마치 읽지 않으면 죄를 지을 같은 느낌마저 들게 말이다.
20세기의 지성이자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알베르 카뮈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영원한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
영웅이기를 거부하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순교자 뫼르소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카뮈는 알제리 출신의 젊은 무명작가에 불과했다. 현대 프랑스 문단에 이방인처럼 나타난 이 소설은 출간 이후 한순간도 프랑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진 적이 없는 걸작이 되었다. 양차 세계 대전으로 정신적인 공허를 경험한 당대 독자들에게 카뮈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현실에서 소외되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이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마주하는 실존 체험을 강렬하게 그린 이 작품은 여전히 고전 중의 고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p.37
언제나 다름없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이제 엄마의 장례가 끝났고, 나는 다시 일을 하러 나갈 것이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의 장례식 직후 너무나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현실을 직시하는 뫼르소의 생각은 과연 비난받아야 만 할까? 요즘은 너무나 당연한 듯이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p.55
그가 자기 집 문을 닫았고, 방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침대가 삐걱거렸다. 그러다가 벽을 통해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에 나는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왜 엄마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옆집 할아버지가 그의 반려견을 잃고 슬픔에 빠지는 장면에서, 주인공은 그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나는 여기서 주인공이 정상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그것이 당연한 것인지, 왜 인지 모르는 것은 그의 성장 환경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p.100
체코슬로바키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기이한 이야기.
어쩌면 뫼르소의 이야기의 결말도 기이할 것이라고 암시를 주는 듯하다.
p.141
그가 생각할 때 우리는 모두가 다 사형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이야기를 가로막고, 그건 같은 경우가 아니라고, 더군다나 어떤 경우에도 그것이 무슨 위안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야 그렇지요.” 그는 동의했다. “그렇지만 오늘 당장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신은 언젠가는 죽어요. 그때 가서도 같은 문제가 제기가 될 거예요. 그 무서운 시험을 어떻게 감당할 건가요?” 나는, 내가 지금 감당하고 있는 것과 꼭 같은 방식으로 그 시련을 감당할 거라고 대답했다.
사형을 앞두고 신부와의 대화에서 죽음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인식마저도 신부에게 질타를 받게 된다. 그는 죽음에 대해서도 ‘이방인’인 셈이다.
p.147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결국 이방인인 주인공은 이방인으로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이방인에서 벗어난 것 같다.
p.153 - 미국판 서문
그는 거짓말하는 것을 거부한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결국 뫼르소의 죄는 ‘살인’이 아니라, ‘거짓말하는 것을 거부’한 죄 인가?
매일 거짓말을 강요받고, 거짓말을 듣고 사는 것 같다.
주인공은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이방인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여전히 이방인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이방인에서 벗어나 같은 무리와 같은 사람처럼 되도록 노력하는 것, 아니면 그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무리에서도 그 이방인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방인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이 필요하다.
옮긴 이(김화영)의 작품해설로 마무리.
삶과 죽음은 표리 관계를 맺고 있다. 필연적인 죽음의 운명 때문에 삶은 의미가 없으므로 자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한정된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이 소설의 참다운 주제는 삶의 찬가, 행복의 찬가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이것이 이 비극적인 소설의 진정한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