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안 깨는 건 수면 부족인가, 수분 부족인가
우리가 마시는 술의 주성분은 아이러니하게도 알코올이 아니고 물입니다. 알코올 도수 19도인 소주를 예로 들면 소주 한 병 360ml의 81%는 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성 성분으로만 보면 알코올을 마신다기보다는 물을 마신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많은 양의 물을 마셨는데, 우리는 왜 다음 날 심한 갈증을 느끼는 걸까요? 이유는 알코올의 이뇨작용으로 인해 우리가 마신 물보다 훨씬 많은 양의 물을 우리 몸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입니다. 술 한 병을 마시면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의 수분이 소변을 통해 우리 몸 밖으로 빠져 나갑니다. 술을 마실 때 평상시보다 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도 그 때문이죠. 소변을 통해 술이 빠져나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 몸에 있던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술을 마실 때는 가급적 물을 많이 마셔야 합니다. 물을 자주 마시면 우리 몸에 수분을 공급해 체내 알코올 농도를 희석해 줄 뿐만 아니라 포만감을 느끼게 해 주어 술을 적게 마시게 됩니다.
술 마신 다음 날 아침, 술이 깨지 않는 건 전날 늦게까지 마신 탓에 수면부족 때문이기도 하지만, 몸에 물이 부족한 수분부족이 더 큰 이유입니다. 술 마시는 동안의 충분한 수분 섭취는 숙취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숙취의 원인은 아직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숙취의 원인은 술에 소량 포함되어 있는 메탄올과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 생긴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물질 때문입니다.
우리가 술을 마실 때는 손과 입이 바쁘지만, 술이 일단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고 나면 가장 바빠지는 것은 간입니다. 간에 도달한 알코올은 2단계에 걸친 분해과정을 거치게 되는데요, 1단계는 알코올이 아세트알데히드로 분해되는 과정이고, 2단계는 아세트알데히드가 무해한 아세트산으로 분해되는 과정입니다. 1단계에서 만들어지는 이 아세트알데히드가 바로 숙취의 주범인데요, 숙취를 줄여주기 위해서는 이 아세트알데히드를 빨리 분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술꾼들의 한결같은 바램은 술 마신 다음 날 숙취 없는 아침이 아닐까요? 취하려고 마시는 술인데 숙취가 없기를 바란다는 것이 모순인 걸 알면서도 우리는 술자리에서 항상 이런 바램을 갖곤 합니다. 숙취는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있지만, 위스키 등의 독주를 마셨을 때보다 막걸리나 와인을 마셨을 때 숙취를 심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숙취가 심한 술은 모두 발효주로 도수가 낮은 술이고 비교적 뒤끝이 깨끗한 술은 증류주로 도수가 높은 술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도수가 높은 술이 잘 깨지 않아 숙취가 심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셈이죠.
왜 알코올 도수가 낮은 발효주를 마셨을 때 더 심한 숙취를 느끼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발효주와 증류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습니다. 술은 쌀, 보리, 밀, 포도, 수수, 옥수수, 감자 등의 다양한 원료를 발효시킨 후 미생물이 당분을 분해하여 알코올로 만든 것입니다. 당분이 분해되어 만들어진 알코올은 에틸알코올(에탄올)과 메틸알코올(메탄올)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에탄올은 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알코올로 우리 몸속에서 비교적 쉽게 분해되지만, 미량 생산되는 메탄올은 독성이 매우 강해 과량 섭취할 경우 눈이 멀거나 사망에 이르게 되는데 이 미량의 메탄올이 강한 숙취를 일으킵니다.
그렇다면, 발효주를 증류해서 만든 위스키와 같은 독주에는 메탄올이 없는 걸까요? 증류주는 이름처럼 발효주를 끓여서 알코올을 증류시킨 후 모아서 만든 술입니다. 에탄올과 메탄올의 끓는점은 각각 78.3℃와 64.7℃로 14℃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가열하기 시작하면 끓는점이 낮은 메탄올이 먼저 증발합니다. 증류주를 만들 때에는 증류 초반에 먼저 증류되어 나오는 초류(初留)는 버리고, 에탄올이 증류되면 이것을 모아서 증류주를 만들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메탄올을 비롯해 숙취를 일으키는 유해성분의 대부분이 제거됩니다. 또한, 독주의 경우 숙성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숙취를 일으키는 유해성분이 추가로 제거되기 때문에 독주가 뒤끝이 깔끔한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면서 술 한 잔이 있는 지인들과의 떠들썩한 자리가 그리워집니다. 코로나 덕분에(?)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은 그것이 없어진 뒤에야 그 빈자리를 알 수 있고 그리워지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