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헤리베 박씨는 아프네 나만알지 펩시콜라"
구구단, 국민교육헌장, 훈민정음 서문, 그리고, 주기율표.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던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에서 반드시 외워야 했던 것들이다.
구구단, 국민교육헌장, 훈민정음 서문은 학교와 선생님을 불문하고 외우는 내용이 같았지만 화학시간에 배운 주기율표는 학교마다 외우는 방법이 달랐고 선생님마다 달랐다. 심지어는 학생마다 다른 경우도 있었다.
[ 이걸 다시 보게 될 줄이야! ]
대개 주기율표 세번째 줄까지는 암기했을 것이다. 오래 전이라 가물가물하겠지만 기억을 한번 소환해 보자.
H, He, Li, Be, B, C, N, O, F, Ne, Na, Mg, Al, Si, P, S, Cl, Ar.
‘수헤리베 박씨는 아프네 나만알지 펩시콜라’
가로줄을 주기(period, 週期)라고 하며, 세로줄은 족(group, 族)이라고 하고 같은 족에 속하는 원소들은 화학적으로 유사한 성질을 갖는다고 배웠다.
물(H₂O)은 산소원자 1개와 수소원자 2개로 구성되어 있고, 분자량은 18이다.
주기율표에서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원자량이 커지기 때문에 아래쪽에 있는 물질과 결합한 화합물은 크기도 커지고 끓는점도 높아진다. 이 기준으로 보면 분자량이 달랑 18인 물은 다른 물질에 비해 끓는점이 엄청 낮아야 한다.
우리는 물이 100℃에서 끓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다른 물질의 끓는점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누군가가 ‘왜 우리가 화학 교과서에나 나오는 물질의 끓는점까지 알아야 하는 거지?라고 묻는다면, 글쎄...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글의 전제는 물에 대한 알쓸신잡이다. 알아둬 봤자 쓸데는 없지만 알고 싶다고나 할까?
주기율표로 돌아가서 물(H₂O)과 비슷한 성질을 갖는 화합물의 끓는점을 비교해 보면 우리의 예측이 맞는지 확인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과 비슷한 성질을 갖는 화합물은 마치 쥬라기 시대의 공룡 이름 같은 황화수소(H₂S), 셀레늄화수소(H₂Se), 텔루르화수소(H₂Te)와 같은 듣보잡들이다.
나열한 순서대로 주기율표의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고 분자량도 커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보면 끓는점도 나열한 순서대로 높아져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그림을 보면서 설명하는게 이해가 쉬울 것 같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물을 제외한 나머지 화합물의 끓는점은 우리가 예상한 대로 착착 들어맞는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라면 물의 끓는점은 영하 80℃ 근처 어딘가에 있어야 하지만 물의 끓는점은 거기에 없다. 그것보다 한참 높은 100℃에 올라가 있다.
[ 예상대로라면 물은 영하 80℃에서 끓어야 한다 ]
물은 비숫한 물질에 비해 끓는점이 높아도 너무 높다. 하지만, 물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끓는점 덕분에 지구에 있는 물의 대부분은 액체상태로 존재할 수 있게 되었고, 또 그 때문에 지구상의 생물이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99℃의 물과 100℃의 물, 하늘과 땅 차이"
물은 100℃에서 끓는다. 낮은 온도부터 데워지기 시작한 물은 99℃까지는 끓지 않고 있다가 1℃가 더해져 100℃가 되는 순간 폭발적으로 끓기 시작한다. 99℃까지 아무리 온도를 잘 올려도 마지막 단 1℃를 올리지 못하면 물은 끓지 않는다. 물이 끓어 수증기가 되기 위해서는 증발열이라고 하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1g의 물을 1℃ 높이기 위해서는 1cal의 열량이 필요하지만, 1g의 물을 끓여 수증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그마치 539cal의 열량(증발열)이 추가로 필요하다. 이 열량은 0℃의 물을 99℃까지 올리기 위해 필요한 열량의 5배가 넘는다.
그래서 99℃의 뜨거운 물과 100℃의 끓는 물은 종종 노력과 성공에 비유되곤 한다. 마지막 1℃의 노력이 부족하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끓는점이라는 것은 인생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한 순간의 상징적인 의미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종영된 KBS1의 『강연 100℃』라는 교양 프로그램도 이 의미를 담은 것이다.
『강연 100℃』 출연자는 마지막 1℃의 노력으로 끓는점이라는 성공에 도달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물을 99℃까지 데우기 위한 노력보다 마지막 1℃를 올리기 위한 노력이 훨씬 힘들고 이겨내기 어려운 듯하다.
그런데 치열하게 살아온 그들 삶의 온도는 물이 끓는 과정과 너무나도 많이 닮아 있다.
"꿈은 나이가 없어요"
‘고도원의 아침편지’의 주인공 고도원 씨가 『강연 100℃』에 출연해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꿈꾸는 행복 배달부라고 불리는 고도원 작가는 20년 가까이 매일 320만명에게 편지를 보낸다. 편지의 내용은 꿈, 희망, 위안 등인데, 작가가 따뜻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작가가 과거에 지독하게도 어려운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살아왔던 삶, 그리고 본인이 간절하게 원했던 일들을 이뤘지만 뇌졸중 전조현상으로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되고 그 이후 꿈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시작했다고 한다.
'꿈꾸는 자는 늙지 않는다'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꿈은 나이가 없어요. 젊은 사람에게도 꿈이 필요하지만, 황혼기에 있는 분들도 새로운 꿈, 멋있는 꿈을 꾸길 바랍니다"
[ 고도원의 아침편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