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정수량 1,330,000,000,000톤의 정수기
하루 정수량 1,330,000,000,000톤의 정수기
반갑지 않은 가을장마와 태풍의 영향으로 전국이 물난리를 겪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가을장마 영향으로 전국에 집중호우가 이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전국에 쏟아진 엄청난 양의 빗물은 어김없이 모두 바다로 흘러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강물이 흘러 들어가는데도 바다는 넘치지도 수위가 올라가지도 않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그 이유가 바닷물이 증발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증발에 대한 개념을 알지 못했던 옛날 사람들과 어린아이들 눈에는 바다가 넘치지 않는 것이 신기하게 비춰졌던 것 같습니다.
한 10년 전쯤 인터넷 상에 ‘바다가 넘치지 않는 이유’라는 제목의 초등학생 동시가 누리꾼들의 웃음을 자아낸 적이 있었는데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비가 그렇게 내리고 / 눈이 그렇게 내리고 / 또, 강물이 그렇게 흘러가도 / 바다가 넘치지 않는 건 / 물고기들이 먹어서이겠지’
어린아이 입장에서 정말 명쾌하게 바다가 넘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바다가 넘치지 않는 것은 물이 증발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장마철이나 태풍이 몰려올 때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증발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구름을 만들 수 있는 것인지 고개가 갸웃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1년 동안 증발하는 물의 양은 485조톤으로 485 숫자 뒤에 0이 자그마치 12개나 붙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양입니다. 485조톤의 대부분인 424조톤은 바다에서 증발되고 나머지 61조톤은 육지에서 증발됩니다.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바다가 증발량의 대부분을 채워주는 셈이지요. 증발로 만들어진 485조톤의 구름은 비가 되어 바다에 385조톤이 내리고, 나머지 100조톤은 육지에 내립니다. 계산을 해보면 바다는 증발한 양보다 적은 양의 비가 오고, 반대로 육지는 증발한 양보다 많은 양의 비가 옵니다. 그 차이가 39조톤인데, 이 양이 바로 육지에 비로 내린 다음 바다로 흘러드는 양이 됩니다. 이렇게 덧셈 뺄셈이 딱 맞아 떨어지는 물의 순환 때문에 물이 아무리 바다로 흘러들어도 바다는 넘치지 않는 겁니다.
바다로 흘러들었던 물이 증발해서 구름이 되고, 이 구름은 비가 되어 다시 땅으로 내려오는데 이 과정이 우리가 알고 있는 물의 순환입니다. 증발은 물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역할을 하고, 강우는 육지에 있는 생물에게 물을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순환과정을 통해 우리가 쓰고 나서 버린 지저분한 물이 다시 깨끗한 물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지요.
지구상의 물은 순환을 통해 정확하게 증발한 양만큼 비로 내립니다. 덕분에 바다는 일정 수위를 유지할 수 있고, 육지에 있는 생물은 일정한 양의 비에 의존해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지구는 수억 년 동안 이 안정적인 균형을 유지해 왔지만, 최근 들어 기후변화로 이 균형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체감하는 것처럼 지구는 조금씩 더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0년마다 +0.2℃씩 꾸준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온도가 올라가면 증발량이 늘어나고 증발된 수증기가 많아졌다는 것은 강우량이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늘어난 강우량이 필요한 곳에 내리면 좋겠지만, 그건 우리의 바람일 뿐이고 자연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결국, 늘어난 수증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 붓습니다. 증발량과 강우량이 늘어나면서 어떤 곳은 침수피해가 속출하고 어떤 곳은 기록적인 가뭄에 시달리는 극단적인 기후현상이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물이 계속해서 순환된다고 얘기하니, 언뜻 물이 무한한 자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물이 순환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의 얘기입니다. 물이 순환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한번 사용하고 버린 물이 다시 빗물로 돌아오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데, 이 시간보다 빨리 물을 쓰게 되면 물 부족을 겪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순환을 통해 우리에게 늘 공급되는 물이지만 아껴써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