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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머리 소년 Jan 16. 2023

《열한 계단》을 읽고

(채사장, 웨일북스)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 개인의 성장과정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인간의 정신적인 성장과정을 일반화했다고 해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내적으로 성장해가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깨는 외부의 힘이 필요한데 그 힘은 나를 불편하게 하는 오랜 지혜라고 저자는 말한다. 지혜를 얻어 성장하는 방법론으로 헤겔의 변증법을 제시한다. 정(正)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 반(反)은 성장에 필요한 불편함으로 규정한다. 책의 구성도 변증법에 근거해 전개해 나간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출발해 문학을 접하고 기독교의 정과 불교의 반이 합쳐져 철학으로, 철학의 정과 과학의 반이 합쳐져 이상으로 풀어나가는 식이다. 정반합의 변증법으로 책을 풀어나가는 저자의 논리도 논리지만, 분야를 가리지 않는 그의 방대하고 깊은 지식에 놀랐다. 


저자가 두 번째 계단인 신약성서 편에서 재수생의 모습으로 그리스도와 나누는 대화는 흥미로웠다. 특히, 씨앗에 비유한 하느님의 말씀, 세상의 악을 몰아내지 않는 이유 등에 대한 질문은 나도 예수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었다. 책에서는 성경 구절과 비유를 통해 예수의 답을 들려주지만 그 역시 시원하거나 명쾌한 답은 아니었다. 


신약성서 편과 붓다 편을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종교적 구원에 이르는 길을 신약성서 측면과 붓다 측면으로 구분해 제시한다. 첫 번째 길은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길이다. 두 번째 길은 붓다를 뒤에 두고 홀로 걸어가는 길이다. 이런 불분명한 선택에 누군가는 돌을 던질 수도 있지만 저자는 두 가지 길이 모두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종교적 구원은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궁극의 목적일텐데 어찌 하나의 종교에서만, 하나의 방법으로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까? 민감할 수 있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무리없이 매끄럽게 연착륙시켰다는 생각이다. 


책의 중반부, 정확히는 네번째 계단 철학 편에서부터 따라가기 어려웠다. 저자는 니체의 주장과 사상을 옮겨 적으며 니체의 주장과 사상은 불편하고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저자의 그런 말 조차 와 닿지 않았다. 저자는 열한 계단을 올라가는 과정을 설명했지만 나는 세 번째 계단 쯤에서 멈췄다. 그리고는 계속 올라가는 사람을 바라만 볼 뿐 따라가지 못했다. 아니 따라갈 생각도 갖지 못했다. 저자가 책의 서두에서 던졌던 익숙한 책 외에 불편한 책을 읽어 지식의 지평을 넓힐 것을 조언했는데 나는 책장을 덮으면서도 이 책은 내게 여전히 불편한 책으로 남았다. 


책은 중반부를 넘으면서 종교, 철학을 넘어 환타지 소설 같은 느낌마저 들어 공감하기가 더욱 어려웠는데 저자는 그 이유를 마지막 장에서 적고 있었다. 저자는 신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도대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 조차 감도 안 잡히는 분야가 저자의 가장 큰 관심사라고 말한다. 나는 책 후반부를 읽는 내내 저자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나는 저자의 의도대로 책을 읽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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