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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머리 소년 Jan 16. 2023

《하얼빈》을 읽고

김훈, 문학동네

책 제목 하얼빈에서 나는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을 떠올렸다. 하지만 책에서는 안중근뿐만 아니라 안중근에 가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안중근의 주변 인물을 그리고 있다. 아내 김아려와 2남 1녀의 자식이 그려지고, 거사를 함께 했던 우덕순이 그려지고, 안중근에게 세례를 내린 한국천주교회가 그려진다. 이토 히로부미가 그려짐은 물론이다. 


러시아와의 경제회담을 위해 하얼빈으로 가는 이토의 심리를 저자 특유의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국을 침탈한 원흉으로 묘사하지도, 일본 개국공신의 영웅으로 그리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책의 전반부는 안중근보다 오히려 이토에 대한 지면 할애가 많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하는 장면은 책의 중간쯤에 나온다. 이 장면이 클라이막스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책에서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아주 짧게 다룬다. 오히려 거사 이전에 옷을 사 입고, 이발을 하고, 사진을 찍는 안중근과 우덕순의 심리를 더 깊이있게 묘사하고 있다. 아마도 저자는 책에서 저격 사건보다는 등장인물의 심리를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와 2남 1녀의 자식에 대해서는 책을 통해 처음으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안중근은 거사를 도모하면서 아내와 자식이 조선에서는 이토 살해범 가족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알고 하얼빈으로 불러들인다. 하지만 가족이 하얼빈에 도착하기 전날 거사가 이뤄지고 안중근은 체포된다. 큰 딸을 명동성당 수녀원에 남겨 놓고 두 아들만 데리고 남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낯선 땅 하얼빈으로 향하는 아내 김아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곳에서 접한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안중근은 체포된 후 3개월 동안 신문을 받는다. 일본 검찰관 미조부치는 안중근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저격 사건의 정치색을 빼는데 주력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의 동양평화 노선이 훼손되거나 제국의 문명적 위상에 흠결이 생겨서는 곤란했다. 미조부치는 이 사건을 일본의 동양평화 정신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단순한 살인사건으로 만들어야 했다. 이토를 저격한 하나의 사건을 두고 해석이 다른 검찰관 미조부치와 안중근, 두 사람의 심리를 그리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저격 사건에 대한 한국천주교회의 반응을 다루는 대목도 흥미로웠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성당에서 도마(토마스)라는 세례명을 받은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사건에 대해 당시 한국천주교회는 민감할 수 밖에 없었다. 조선에서 근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박해에 시달리다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에서 일본의 개국공신인 이토 히로부미를 천주교인이 저격했다는 사실은 한국천주교회를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었다. 한국천주교회는 1910년 안중근을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죄인’으로 평가했다. 그 이후 거의 80여년 동안 안중근의 행동은 천주교회에서 용납되지 못했다. 1993년 8월 21일 김수환 추기경이 안중근 추모 미사를 집전하면서 안중근이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었던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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