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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hnnap Mar 20. 2024

〈먼지 행성〉


27. 그래도 우리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돼.


 재밌게 봤다. 책의 타겟층은 청소년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그만큼 천진한 시선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 그러면 할 말이 없으니까. 생각나는 요소들을 적어본다.

 만화책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그래픽과 스토리, 그리고 그 조화에 있을 것이다. 먼저 그래픽에 대해서는 긴말할 필요 없이 좋았다. 옷의 무늬 같은 것을 보았을 때 패드와 같은 디지털 환경에서 작업한 것 같다. 하지만 연필 질감이 느껴지도록 그린 게 먼지 행성이라는 서사의 배경과 잘 어울렸다. 쓰레기 작업장의 풍경은 디테일 측면에서 레퍼런스가 있을 것도 같고, 없을 것도 같았다. 집 내부는 공간을 살려서 입체적으로, 집 바깥과 작업장 풍경은 일관되게 평면적으로 구성한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색의 사용에 있어 붉은 색과 청록색만으로 분위기를 표현하고 서사의 온도에 따라 핀트를 맞춘 것이 인상적이었다, 분위기가 어두워질 때는 아예 색을 빼고 흑백으로 가다시피 한 것도. 64p에서 병따개를 들고 있는 손목만 유연하게 나오는 만화적 연출이 재밌었다. 수경 같은 보호경도.

 스토리 측면에서는 명료한데 몰입감이 있었다. 등장인물들 간의 밸런스가 적절했고, 명시적인 목적지는 없지만 일관된 흐름이 있었다. 디테일 측면에서는 나오 아저씨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 일종의 집단기억으로 자리한 유가족의 존재성, 그리고 아프리카의 가나로 몰려드는 폐의류를 떠올리게 하는 불합리한 상호의존성까지. 인류가 보다 지속될 수 있다면 정말로 우주선은 어떤 식으로든 개인화되어 일반 시민들에게 보급될 것이라 생각한다. 환경적 조건에 따라 기능이 분배되는 양상이 행성의 스케일에서 전개되니 그 사이의 먼 허공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소년의 이름이 중성적인 것과 우주를 등질 수 없다는 듯 서로 가족이 되어버렸다는 얘기, 서사를 이끄는 대사들도 좋았다. 현실적으로도 소외된 행성에서 지낸다면 감정이나 대화가 단순해질 것도 같지만, 짧은 와중에 뼈와 힘이 있는 말들이 있었다. 기록봇을 찾았을 때 리나가 한 말, 지킬 수 없는 약속도 있다는 츄리의 대사, 무엇보다 나오 아저씨가 진 씨에 대해 한 말 :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들려줄 사람이라는 말은 특히 흔들리는 어른들의 느슨하면서도 진한 친밀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깜이라는 펫봇의 이름도 앙칼지게 뭉쳐있는 것 같아서 착 기억에 붙었다.

 만화책은 비슷한 이야기라도 그래픽에 따라 뉘앙스가 미묘하게 바뀔 텐데 작가의 먼지 행성은 따스한 느낌이 강했다. 세상 끝이라는 서사의 현실이 문득문득 묻어나면서도 그 농도가 잘 컨트롤된 것 같다. 하나의 정합적인 현실을 창조해낸 것 같다. 만화책의 특성을 살려 SF와 동화 그리고 현실을 잘 버무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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