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들이 겹치고 겹쳐, 생각보다 너무 쉽게 구한 독일 집
독일로 입국은 홀로 했다. 아내와 세 아이 모두 함께 독일로 단기이주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비행기에 오른 것은 나뿐이었다. 이유는 일관적으로 독일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말에 집 나가면 무슨 고생이라 하는데, 어린아이들까지 데리고 독일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랴, 살 집을 구하랴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독일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최대 90일간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는 이른바 쉥겐 협약을 맺은 곳이었기 때문에 일단 먼저 비행기표만 사들고 독일로 날아올랐다. 목표는 단 하나! 그 3개월 안에 우리 다섯 식구가 살 수 있는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사실 3개월이라고 하면 집 하나 구하는 데 충분한 긴 시간처럼 보이지만 그도 마냥 그렇지는 않았다. 되려 당시에는 3개월 안에 해결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까지 들 정도였다. 몇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과거 독일에 체류하셨던 분께 질문하여 얻은 정보 중에 재독 한인 정보교환 사이트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매우 비관적으로 들리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것은 "외국인들이 집을 얻는 것은 비자를 받는 것만큼 어렵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있는 가족에게 집을 주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때로는 외국인들의 신원을 보증하기 위해 체류허가증명이나 재정보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체류허가를 위해 집을 구해야 하는 외국인들에게 체류허가 증명을 하라는 말도 안 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반복되기도 한다." 따위의 것이었다.
이 따위의 이런저런 걱정으로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시간 동안 단 한 시간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심지어 비행기의 초과 예약으로 온라인 체크인을 해둔 내 좌석이 사라지는 바람에 항공사에서 제공해 준 비즈니스 석에 앉아있었지만, 나는 다리를 뻗어 누워있었을지언정 눈은 붙일 수 없었다. 비행 내내 무계획으로 사직서를 내고, 신속히 한국의 재산을 정리하고, 비행기표만 하나 달랑 사들고 독일로 떠나게 만든 과거의 나를 무수히도 꾸짖었다.
내가 처음 머물게 된 곳은 독일에 있는 어떤 한국인 목사님 댁이었다. 그 목사님의 사모님께서 아내의 지인의 친구분이었는데, 아주 우연한 계기로 소개를 받아 아내가 사모님을 한국에 있을 때 한 번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우리는 헤센(Hessen)이라는 주의 속한 마부르크(Marburg)라는 도시에 있는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주 놀랍게도 그분께서 거주하는 곳이 그곳이었다. 다행히 아무런 연고도 없는 우리 가족에게 목사님 부부가 선의를 베풀어주셨다. 나는 3개월의 무비자 체류기간 동안 그분의 댁에 머물면서 집을 구하고, 독일에 대한 정보를 얻기로 했다. 감사한 일이었다.
일이 꼬이려면 철저히 조사하고, 분석하고, 준비하고, 조심히 처리해도 안 되는 때가 많은데, 반대로 일이 풀리려니 말도 안 되는 우연들이 모여 쉽게 해결되는 수도 있었다. 독일에 도착하고 이틀이 지났을 때 나는 한 독일 가족이 초대한 점심식사 자리에 동행할 수 있었다. 마부르크에서 차로 대략 15분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한 독일인 가족이 오랜 친구 가족을 점심식사에 초대한 것인데, 그 친구는 한국인 여성을 만나 결혼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 자리에 목사님 가족이 동행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당시 그 목사님 댁에 있던 객이었는데, 혼자 두기가 뭣하셨던지 함께 갈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우연은 여기서 한 번 더 더 겹치는데 하필 그곳에 다락까지 포함하면, 2,5층이 되는 단독주택에 세 들어 살 사람을 찾는 중이었다. 나는 당장에 그 집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목사님께 말했고, 목사님은 다시 한국인 아내를 둔 그 독일 친구에게 나를 소개했고, 그 독일인 친구는 다시 그 집주인에게 나를 소개해주었다. 독일에 보증 중에 가장 믿을만한 보증이 바로 지인의 소개이다. 나는 우습게도 이전에는 몰라던 두 사람의 관계를 건너 건너 지인의 보증을 받을 수 있었고, 다음 날 집을 계약할 수 있었다. 그때가 독일에 도착한 지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독일생활 더 알아보기
나처럼 독일에서 집을 구할 수 있는 경우는 사실 매우 드물 것이다. 운이 좋았다고 보는 편이 옳다. 내 경험에서 그나마 얻을 수 있는 보편성을 찾는다면,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경험만이 독일에서 우리들이 직면하게 될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생각보다 다양한 사례들이 있고, 때로는 숨겨진 좋은 사례들이 많다. 그러니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부터 먹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다만 이외의 부분에서는 독일에서 집을 얻는 방법에 대해 알기 어려우므로, 일반적으로 독일에서 집을 구하는 방법 등에 대해 보다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집 구하기. 일단, 독일에는 한국의 전세와 같은 방식은 없다. 집을 사는 것이 아니라면 매월 월세를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독일어로는 Miete라고 한다. 월세를 내는 방식은 난방비, 수도세 등을 포함한 에너지 사용비와 관리비를 포함하여 내는 방식인 Warmmiete와 추가 관리비는 스스로 사용한 만큼 내고, 집을 빌리는 비용만 내는 방식인 Kaltmiete로 구분된다. 또한 집을 계약할 때, 월세의 2~3개월 분에 해당하는 보증금을 내는데, 이는 계약 종료 후 돌려받게 된다. 다만 집의 상태가 나빠졌을 경우 임대인(Vermieter)이 그중 일부를 제하고 줄 수 있다. 반면 독일에서는 임차인, 세입자(Mieter)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임대금액을 올려야 할 때 주인이 임의로 제한 없이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역에 따라 임대료 상한 기준(Mietpreisbremse)이 존재하며 그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또한 일단 계약한 이후에는 함부로 세입자를 내보낼 수 없다. 사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임대인이 세입자를 더 깐깐하게 뽑는 것이기도 하다.
자, 그럼 독일에서 어떻게 집을 찾고 계약하는지 일반적인 방법들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부동산을 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독일에도 중개인(Makler)이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지 않아 찾기도 힘들고, 계약 등의 과정에서 지불되어야 하는 비용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에 한정되는 편이다. 독일은 지역 네트워크가 잘 발달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여전히 아름아름 주변의 사람들이나 지역신문, 대자보 등을 통해 주변 지역의 정보를 얻는 촌스러운 방식을 선호한다는 뜻이다. 나의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주변의 친구를 통해 직접 집을 알아보고 1:1로 계약했다. 그러고 보면 독일은 여러 부분에서 인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물론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온라인 서비스도 있다. 대표적으로 Immobilienscout24, Immonet, WG-Gesucht, eBay Kleinanzeige가 있다.
일단 원하는 요구조건에 맞는 집을 찾았다면, 집주인(임대인)과 약속을 잡고 집을 직접 방문한다. 우리나라라면 개개인이 따로 약속을 잡아 방문할 것인데, 독일은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경쟁자들이 함께 해당 집을 방문하는 것이다. 이를 Massenbesichtigung이라 한다. 앞서 임대인이 여러 이유로 인해 세입자 선택을 신중하게 한다고 말했는데, 계약단계에서 '갑'은 뭐니 뭐니 해도 임대인이다. 돈이 있다고, 내가 그 집이 마음에 든다고 집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집주인이 예비 세입자가 마음에 들 때 그를 '간택'하는 형식이 일반적인 독일의 모습이다. 이따금 집주인은 예비 세입자에게 신용기록증명서나, 고용계약서, 급여명세서, 외국인들에게는 체류허가서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그만큼 까다롭게 세입자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하여 집주인과 예비 세입자의 마음에 서로 모아지면 계약을 할 수 있다. 내가 깜짝 놀란 것은 임대계약서가 매우 자세하다는 사실이다. 거기에는 계약당사자와 집의 정보는 물론, 건물의 규칙은 어떠한지, 예를 들어 밤에 소란하지 말 것, 또는 애완동물은 허용유무 등이나 청소하는 방식과 같이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계약을 해지할 때 반드시 해야 하는 절차 등 다양한 상황에서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참고로 우리 집의 계약서는 A4용지로 11장에 달한다.